광주에 최초의 고아원이 있었다- 충현원과 박순이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6.26 08:36 의견 1

◆ 양림동에서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할 때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시작한 고아원의 역사를 알고 싶어 충현원에 꼭 둘러보고 싶었으나 충현원(忠峴院)은 언제나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늘 궁금하던 차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국가유산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충현원에서 박순이 선생님의 며느리 유혜량 대표이사를 만났다. 충현원을 둘러보며 충현원의 역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현원 앞마당에서 유혜량 대표이사와 함께

◆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84에 위치한 충현원은 박순이 선생이 젖먹이 전쟁고아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충현원(忠峴院)을 풀어보면 정성을 다하는 언덕 집이 된다. 이 집에서 아이들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보살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직단으로 올라가는 왼편에 위치하고 있어 위치와도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처음 시작은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부터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6.25 전쟁전후 발생한 고아들을 위해 국내에서 최초로 설립하여 운영한 보육시설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보육시설이다.

충현원 원훈

◆ 충현원은 박순이 선생이 1949년부터 1952년까지 45명의 고아들을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보살피다가 고아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1952년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거처를 옮기고 광주 충현영아원을 설립하며 시작되었다 이때 120명의 아동을 돌보았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데 선교사들의 도움이 컸다. 의약품, 자금 음식 옷 등을 지원해 주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시작한 고아원 사진(맨오른쪽 끝)

◆ 박순이 선생은 여순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젊은 나이에 두 어린아이들과 생활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전쟁고아들을 돌보는데 앞장선 사람이다. 1948년 선교사 가족은 박 선생에게 함께 미국에 가서 살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길거리에 굶주리는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 1972년 충현아동상담소. 충현어린이집, 1973년 국내외 입양 및 미혼모 상담을 위한 충현영아일시보호소 개설, 1974년 전남 기아 일시 보호소 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1975년 광주충현원 부속의원 개설 등 3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양한 복지사업을 추진하였다. 충현어린이집은 2023년까지 운영되었는데 급감하는 유아수로 인해 아이들이 없어 2024년 문을 닫았다고 한다

현재 전시실로 사용하는 공간

◆ 충현원은 2008년부터 5년간 공사 끝에 2012년에 기념관, 체험관, 예절관, 보육관과 보수된 전시관이 복원되어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역사 체험의 교육장이자 전쟁고아를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시관과 기념관에는 6.25전쟁고아와 고아들을 돌본 참전용사들의 사진, 충현원에서 소장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체험관·예절관·보육관은 해외 입양인과 가족 등이 방문할 때 한국 예절문화 등을 체험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현재 다시 보수 중이다. 빨리 보수가 끝나고 전시관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으면 한다.

창측 자연광 이용 황달치료 재현

◆ 충현원은 미지정 국가유산이지만 지정국가유산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려움에 처해있다. 하루빨리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활용되었으면 한다

전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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