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보고 강천산

이종철 선임기자 승인 2024.07.09 15:07 | 최종 수정 2024.07.10 04:42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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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의 비경 ㅡ 병풍폭포


매홀역사문화포럼. 37차 정기탐방ㅡ 강천산에 홀릭하다

매홀역사문화포럼의 행사로 전북 특별자치도 순창의 강천산길을 걸었다. 해설사의 구수한 남도 아리랑 가락을 경청하며 흥겹게 오르는

강천산 폭포
강천사 종각
발효박물관
강천산 입구

길은 아름다운 폭포와 바위를 바라보며 맨발로 걷는 길이다. 삼삼오오 등산객들이 손에 신발을 들고 길을 걷고 있어서 나도 신발을 집어 들었다. 맨발로 걸으면 성인은 아랫배가 빠지고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조정되어 건강에 좋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옛 선인들도 이 길을 맨발로 걸으며 도를 닦았을 것이다. 걸으면서 지나는 작은 다리들은 각각 이름이 있다. 지나는 길가에서 폭포를 만났다. 병풍폭포라고 한다. 폭포를 이루는 바위는 병풍바위이다. 폭포 아래의 연못은 밤마다 신선(神仙)이 내려와 목욕하고 노는 곳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신선이 목욕하고 갓을 놓고 올라갔는데 그 갓이 변하여 병풍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傳說)이 있다.

걸인들이 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받아 강천산 스님에게 시주하고 부처님께 복을 빌었다는 거라시바위를 지났다. 또한, 지나는 길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자연적으로 폭포가 되는 천우(天雨) 폭포도 지나갔다.

걸어서 보이는 작은 누각(樓閣), 삼인대(三印臺)를 지났다. 삼인대는 중종 10년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愼) 씨의 복위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라고 한다.

그 옆에 작은 절 강천사가 보였다. 그 옆에 강천사 스님으로 보이는 이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스님의 노래에 취한 관광객들이 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었다.

길을 걸어 현수교(懸垂橋)까지 왔다. 고개를 들어 높게 보이는 현수교는 아득하게 느껴졌다. 다시 길을 걸어 구장군폭포까지 왔다, 마한 시대 9명의 장수가 전투해 패하자 이곳에서 자결을 시도하다 다시 결의를 다지고 전장에 나가 대승을 거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구장군폭포이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에 담고 돌아 내려왔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강천사 모과나무를 만났다. 수령이 300년이 넘은 조화로운 경관을 가진 모과나무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이라는 팻말이 앞에 있었다.

다시 내려오는 길 강천사 앞의 법정 스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중략)...(귀한 인연이기를/ 법정 스님)

● 강천산(剛泉山, 583)은 전북 특별자치도 순창군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군립공원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강천산에 있는 고려말 도선국사가 건립한 사찰이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단경왕후 신 씨는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반정 때 피살된 좌의정 신수근의 딸이다. 반정공신 박원종 등은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신수근의 딸을 왕비로 세우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에게 신 씨를 폐출하게 하였다, 그 후 새로 왕비가 된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에서 물러남은 물론 죽음을 각오하며 폐비 신씨의 복위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배되었다. (길가의 팻말에서)

● 법정 스님(1932-2010)은 불교의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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