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om/shorts/C-WuiyVeivs?feature=share고구려는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장악한 육지국가이지만 동시에 서해북부, 요동만, 발해만의 일부,동해북부의 해앙활동도 활발한 해륙국가였다.
동아시아 공간은 지중해적인 형태와 성격, 다양한 생태환경과 종족,나라,문화 등 인문환경이 다양하다. 따라서 해양주변의 국가들은 해양활동이 활발해야 정치,무역,어업 등에서 유리했다. 고구려는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의 메카니즘과 이용방식을 깨달아서 전기부터 해양진출을 시도했다.
특히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은 중궄 지역의 분열 상황과 북방유목 종족들의 미통일 상황을 이용해 남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서 백제,신라,가야, 왜 등을 제압했다. 또한 해양을 이용해 분열된 중국지역을 대상으로 동시 등거리외교를 실행했고, 백제 신라 왜가 중국 지역 및 북방세력과 교류하는 시도를 막았다.
광개토태왕은 해양과 육지의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만나는 지역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요동반도 남단, 경기만, 두만강하구, 동해중부 그리고 만주 강수로망의 거점들도 점령했다. 또한 항구도시인 평양의 개척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장수왕은 427년에 수도로 삼았고, 고구려는 해륙국가를 완성했다.
동아지중해에서 정치외교의 중핵, 물류와 무역의 허브, 해륙교통망의 인터체인지 역할을 했다. 당연히 문화도 국제성을 띈 해륙문명적 성격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