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명당은 자손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금강변에 자리한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시조 이도(李棹)의 선조 묘소와 광주 무등산에 위치한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선조 묘소에는 주호대사(朱昊大師), 수상한 머슴과의 인연과 얽힌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전설들은 명당의 중요성과 함께 조상의 음덕(蔭德),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시조 이도(李棹) 선조 묘소의 전설
공주시 신관동 석방현에 위치한 진양각(眞陽閣)은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의 선조 묘소와 주호대사(朱昊大師)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진양각(眞陽閣)에는 풍수에 능한 당나라 고승 주호대사(朱昊大師)의 석상이 모셔져 있으며, 예로부터 명당은 자손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금강변에 자리한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시조 이도(李棹)의 선조 묘소에는 주호대사(朱昊大師)와의 인연과 얽힌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도(李棹)의 선조 이방이(李芳伊)는 금강변에서 가난한 뱃사공으로 살았다. 그는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다. 어느 날, 이방이(李芳伊)에게 남루한 행색의 노승 주호대사(朱昊大師)가 찾아와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호대사(朱昊大師)는 강을 거의 다 건넜을 때, 건너편에 물건을 두고 왔다며 다시 건너가자는 요청을 했다. 이방이(李芳伊)는 불평 없이 주호대사(朱昊大師)의 요구에 따랐다. 주호대사(朱昊大師)는 몇 번이고 이를 속여 강을 건너게 했지만, 이방이(李芳伊)는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노를 저었다. 이방이(李芳伊)에 감탄한 주호대사(朱昊大師)는 "참으로 소문대로 덕이 많은 군자시구려! 그런데 기색을 보아 하니 상중인 것 같은데, 묏자리는 어떻게 잡아 두셨소?"라고 물었다. 이방이(李芳伊)는 선친이 작고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아직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해 임시로 집 뒤에 모셔 두었다고 답했다. 주호대사(朱昊大師)는 맞은편 산자락의 한 지점을 가르쳐주면서 "후일 반드시 이장(移葬)을 하자는 사람이 나타날 터이니, 석회 일천 포를 준비해서 단단히 묻도록 하시오. 그리고 좀 있다 내가 몇 글자 적어 줄 터이니, 꼭 그것을 함께 묻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광해군 때, 당대의 명풍 박상희가 이도의 선조 이석재(李碩材)의 묘소를 찾아 문중에 건의했다. 그는 묘소의 지기가 쇠퇴하여 문중에 멸문의 화가 닥칠 것이라며 이장을 권했다. 문중은 박상희(朴相熙)의 명성에 따라 이장을 결정했지만, 석회로 다져진 묘는 매우 단단하여 삽날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한 층을 걷어내자 글씨가 새겨진 돌이 나왔다. 돌에는 "남래요사박상희 단지일절지사 미지만대영화지지(南來妖師朴相熙 但知 一節之死 未知萬代榮華之地)"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남쪽에서 온 요사스런 술사 박상희가 단지 용의 한 마리가 죽은 것만을 알고, 자손만대로 영화를 누릴 땅인 줄을 모르는구나"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박상희(朴相熙)와 문중 사람들은 주호대사(朱昊大師)의 혜안에 감탄했다. 주호대사(朱昊大師)는 이미 묘소의 미래와 전의예안이씨의 흥망성쇠를 내다본 것이다.
▶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장군의 선조묘에 얽힌 전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에 충장사가 자리잡은 고개를 배재 또는 이치(梨峙)라 부른다. 이 배재는 김덕령(金德齡)이 살던 석저면(石保面) 성안마을과는 약 4km거리로 이 배재에 김덕령(金德齡)의 집안 묘가 있는 곳으로, 그의 고조부(高祖父) 김문손(金文孫)의 묘는 장군이 태어날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 석저면 성안 부락에 살던 김덕령의 고조부 김문손(金文孫)이 살던 시절, 남루한 형색의 젊은이가 찾아와 머슴 살 것을 원했다. 김문손(金文孫)은 부인인 광산 노씨(光山 盧氏)가 일찍 죽어 일손이 부족한터라 이 젊은이를 집에서 부렸는데 밤이면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수상한 행동을 하던 머슴을 김문손(金文孫)이 몰래 따라가 보니, 그는 배재에서 묘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 묘자리는 '회룡고조지명혈'(回龍顧祖之明穴, 용이 산 전체를 감싸 안고 내려오는 형상으로 풍수지리상 사신사가 뚜렷한 천혜의 명당 형국 )라 칭하는 명당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어느 날 머슴은 김문손(金文孫)에게 달걀을 빌려 묘자리에 묻고는 다음 날 다시 파내어 묘자리를 확인했다. 며칠 후 머슴은 김문손(金文孫)에게 집에 다녀오겠다 하고 떠났다. 김문손(金文孫)은 머슴이 떠난 후 묘자리를 살펴보았는데, 풍수지리에 서투른 사람의 눈에도 명단임에 틀림없어 부인을 이장했다.
두 달 후 머슴이 돌아와 김문손(金文孫)에게 배재에 새로 생긴 묘에 대해 물었고, 김문손은 자신의 부인 묘를 이장했다고 둘러댔다. 머슴은 자신은 중국에서 묘자리를 찾아온 사람이며, 그 자리는 대장군(大將軍)이 나올 자리이지만 조선사람이 묘를 쓰면 비록 후대에 큰장수가 나기는 하나 결국에 가서는 천하에 뜻을 펴지 못할 것이니, 중국사람이 천하에 뜻을 펴게 되니 묘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하면 삼정승(三政丞,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올 자리를 잡아주겠다고 제안했다. 김문손(金文孫)은 이를 거절했고, 머슴은 떠나면서 묘의 좌향을 바로잡아 주고 떠났다. 이후, 김문손의 묘는 장군대좌로 불리며 김덕령(金德齡)과 같은 명장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와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선조 묘소에 얽힌 전설은 명당이 자손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조상의 음덕(蔭德)과 인품(人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전설들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우리 삶의 지혜(智慧)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遺產)이다.
🔳 참고문헌
1. 박선홍, [무등산], (재)광주광역시 광주문화재단, 2013.
2. 양봉환, [전의이씨 태사공과 당나라 주호선사에 얽힌 일화], 네이버카페 '한국풍수연구원', 2022.
3.소불, [전의(全義) 이씨 시조 이도와 선조묘에 관한 전설], 네이버 카페 '풍수 한당',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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