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때때로 정치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국경을 넘고, 이념을 뛰어넘고, 금지된 것들조차 허물어버린다. 1960년 이후 단절된 한국과 쿠바의 외교 관계 속에서도 문화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흐름을 하나의 길로 만들 필요가 있다.
📌 쿠바, 한국을 바라보다
쿠바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 문화의 흔적이 보인다. 클럽에서 BTS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류 드라마를 보는 쿠바 청년들이 있다. 정부가 통제하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도 한국 문화는 유튜브, USB, 비공식 스트리밍을 통해 스며들고 있다.
왜 하필 한국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쿠바와 한국은 닮았다. 식민지 경험, 전쟁,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역사.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생존 전략을 만들어온 공통점.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이야기에 공감한다. 쿠바인들이 한국 드라마의 가족애와 정서적 기복에 빠져드는 이유다.
📌 공간이 만들어낸 단절과 연결
한국과 쿠바는 지리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다. 아시아의 한반도와 카리브해의 섬나라. 하지만 공간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와 비례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화가 연결고리가 된다면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진다.
공간이 단절을 만들기도 한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로 인해 해외 콘텐츠 접근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 단절이 오히려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한국의 콘텐츠는 쿠바에서 ‘발견’되는 문화다. 정부의 제한 속에서 스스로 찾고,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다.
이러한 발견의 과정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다. 한국의 문화는 쿠바에서 하나의 상징이 된다. ‘닫힌 사회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 역사적인 외교 수교, 문화가 만든 변화
2024년 2월 14일, 한국과 쿠바는 역사적인 외교 관계 수립을 발표했다. 뉴욕에서 열린 공식 서명식에서 양국은 외교 공한을 교환하며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한국과 쿠바가 60년 만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문화의 힘이 있었다.
쿠바 내 한국 문화의 확산은 한류 열풍과 함께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드라마와 음악을 넘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쿠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경제 모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이 결국 양국 간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쿠바의 첫 주한대사가 임명되었다. 클라우디오 라울 몬손 바에사(Claudio Raul Monzon Baez) 대사는 2024년 1월 초 한국에 부임했다. 그는 한국과 쿠바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며, 특히 문화와 경제 협력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 한쿠바문화친선협회, 한쿠바교류의 가교
한쿠바문화친선협회는 2005년 조갑동 회장의 주도로 설립된 이후,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쿠바 간의 문화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2021년 8월에는 회원을 대폭 확대하여 활동을 활성화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공식 등록되었다. 협회는 문화교류위원회, 경제협력위원회, 정체성위원회, 관광·교육위원회 등 4개의 분과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제2회 쿠바문화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쿠바 영화 상영, 음악 강연 등으로 한국 내 쿠바 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최근 협회는 새로운 회장단을 구성하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두정수 회장(전 파나마 대사), 이종철 부회장(전 볼리비아 대사), 임효상 부회장(전 경희대 스페인어학과 교수)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문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외교 활동을 돕고 있다. 2024년에는 코이카(KOICA) 농업 연수 사업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쿠바 간의 실질적인 협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서울시설관리공단과 함께 제4회 쿠바문화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쿠바 작가전을 진행하는 등 한쿠바문화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통해 양국 간의 우호 관계를 심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촉진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 문화가 이끄는 새로운 가능성
2024년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을 계기로, 한국과 쿠바는 이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었다. 음악, 드라마, 음식, 스포츠뿐만 아니라 농업, 교육,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더 넓은 길로 확장하는 것이다. 문화는 단순한 교류를 넘어,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기초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쿠바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 단순한 외교 관계를 넘어 상호 이해와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이미 그 문을 열고 있다. 음악, 드라마, 음식, 스포츠를 통해 두 나라의 거리는 줄어들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정치적으로 단절된 국가일지라도 문화는 늘 길을 만든다. 이제 우리는 이 흐름을 더 넓은 길로 바꿀 때다. 문화가 만든 가능성을 외교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 다음 칼럼에서는 ‘중남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언어가 문화교류의 문을 여는 방법’을 다룰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