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이슈! 문화유산] 정조가 명명한 지지대(遲遲臺), 원형을 찾기 위한 발굴과 복원 필요해
김희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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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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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에 있는 지지대 고개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지대비(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산72)가 세워져 있다. 지지대비는 1800년(순조 즉위년) 화성어사(華城御史) 신현(申絢, 1764~1827)의 건의를 받아들여 1807년(순조 7) 12월에 세워졌다. 특히 지지대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遲:臺’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을묘년인 1795년(정조 19) 원행 당시 정조에 명에 의해 새겨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금석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지대비 이전 지지대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다. <일성록>에는 당시 지지대의 모습에 대해 미륵현 위에 둥그런 자리가 만들어져 대(臺)와 같이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더 자세한 모습은 <화성행행도> 8폭병풍과 <화성전도> 6폭병풍을 통해 알 수 있다. 을묘년의 원행을 화폭에 담은 <화성행행도> 8폭병풍 중 <시흥환어행렬도> 속 지지대 고개에는 둥그런 형태의 대(臺)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화성전도> 6폭병풍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한 뒤 그려진 <화성전도> 12폭병풍에는 대(臺)의 형태가 사라지고, 비각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즉, 지지대비가 세워지면서, 지지대의 원형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 지지대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현장에 남은 흔적을 확인해야 하는데, 지지대비 바로 옆쪽에 있는 노거수 주변에서 인위적인 치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석재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최초 지지대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화성전도> 6폭과 12폭 병풍에 그려진 표석과 장승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4월 3일에 <화성전도> 6폭병풍에 그려진 표석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지지현 표석이다. 새롭게 확인된 지지현 표석의 전면에는 ‘遲:峴’이 새겨져 있다. <화성지>와 <수원군읍지>에는 왕이 거동했던 필로 구간, 즉 지지현(遲遲峴)을 시작으로,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융릉(隆陵, 수은묘-영우원-현륭원-융릉)에 이르기까지 18개의 표석과 11개의 장승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지지현 표석은 18개의 표석 중 첫 번째 표석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현 표석의 원래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최초 지지대의 원형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발굴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지지대의 원형과 지지현 표석의 본래 위치를 규명하고, 복제 표석과 장승을 세우는 등의 복원에 신경써야 한다. 특히, 지지대는 정조가 직접 행차 중 명명한 지명이자 지금도 매년 성대하게 거행되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의 첫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기에 지지대의 원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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