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군위향교(大邱 軍威鄕校)-1987년5월13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

1470년(성종 1년)에 창건후. 1701년(숙종 27년) 현재자리로 이건. 2023년 7월 1일 대구시로 편입

방일섭 시민기자 승인 2024.07.02 06:27 의견 4

대구 군위향교 光風樓 2층 올라가는 계단

군위향교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1987년 5월 13일 지정되었다가 軍威郡이 2023년 7월1일부로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군위군 문화유산이다.

대구 군위 군위향교의 2층 누각 광풍루(光風樓)
(국가유산청 문화재 지정 사진자료 인용)

광풍루 현판이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군위향교의 누각 현판
1926년에 건립
군위향교 명륜당의 전면 6칸 모습

명륜당 앞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후 다시 지었다.

2023년 6월 군위향교 대성전 수리전 모습

군위향교 대성전(大成殿)은 2023년도 6월에서 12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서, 군위군에서 경상북도 도비와 군위군의 군비 각각 절반씩 예산 3억3천만원을 들여서 대성전 기둥 교체와 동바리 및 벽체와 지붕을 보수를 완료 하였다. 대성전 지붕에 영향을 주었던 수목의 가지치기 작업도 완료하여 피해가 없도록 조치 하였다.

2023년 12월 보수 완료된 대성전의 전면 모습

배향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은 대성(大成)을 의미하는 공자(孔子)의 위패를 모시는 건물에서 유래를. 찾을수 있다. 현재 향교는 남한에 231개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지방학교를 대표하는 관학인 향교(鄕校 : 시골학교)와 사립인 서원(書院)이 있었다.

향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의 제사를 지내면서 지방자제들을 교육시켰던. 관립학교로 인식되고 있다.
향교는 고려조에 설립되었으나 무신집권기와 몽고와 왜의 침입등으로 인하여 저대로 운영되지 못하다가 고려말에 지방관과 유생들의 노력에 의해 점점 그 기능을 회복하고 숫자가 증가되었다.

그 뒤 조선이 건국되면서 향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국가 이념으로 채택된 성리학을 모든 백성에게 보급시키기 위한 "1읍 1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전국의 모든 군현에 향교를 건립하게 된것이다.

대구의 군위향교 전경 모습
(국가유산청 유산지정 사진자료 참조)

향교는 처음에는 향촌 교화와 과거를 통한 인재양성의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건립되었기 때문에 향교 교육은 제도적으로 과거 제도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소과(小科)와 대과(大科, 文科와 武科)로 구분되었고, 시험과목에 따라 유교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명경과(明經科)와 시문을 짓는 제술과(製述科)로 나뉘었다.

소과(小科)에서 명경과 합격자인 생원(生員)과 제술과 합격자인 진사(進士)에게는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갈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300일 동안 공부한 뒤에 대과(大科)에 응시 할 수 있었다.


□ 참고문헌 : 한국의 향교(빛깔있는. 책들, 대원사102-42권 :2000년 3월 15일 발행, 김호일 글, 유남해 사진

Email: izpang@naver.com, 유튜브명: 일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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