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서사예술이 별로 없는 이유에 대한 질문

한 대학원생의 질문과 견해

윤명철 논설위원 승인 2024.07.03 13:15 의견 0

교수님, 서사 예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무척 공감합니다. 소위 K-pop 등 대중 문화를 보면 금자탑을 쌓은 것처럼 이야기 되지만 오래 두고 즐기기에는 문화 소재에 깊이가 없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컨텐츠만 재생산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창작자들의 입장도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 가능성 있는 소재로 따지면 이 땅도 엄연히 사람이 살아온 곳이니 한정이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가공해낼만한 자료가 남아 있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역사를 밝혀주는 사서도 빈약하기 짝이 없고 서사 문학이라 할만한 작품들도 모아봤자 A4 용지로 몇 장 되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정신유산을 남겨주지 못한 조상들의 성토는 뒤로 하더라도.. 이 많은 빈자리를 상상으로 메울 수 있을 톨킨 같은 인물이 한국에 나타날 수 있을까요?

그에 비해 오리엔트와 그리스로마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서양의 방대한 텍스트와 압도적인 지혜는 창작자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문화적인 토양을 알아서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또한 시작은 늦지만 사서, 문학작품의 양과 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풍부한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즉, 한국의 빈약한 창작 예술은 현대 한국인들의 역량 부족이 첫째겠지만, 사실상 '없어서 못 만든다'는 간단하고 어처구니 없는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입장이 극단적일 수 있으나 짧게 생각해보고 여쭈어보는 것이 아님을 이해 바랍니다. 창작자들 입장에서도 쓸만한 자료나 선례가 없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창작자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소재의 원천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한 교수님의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부족한 시각으로 생각해본 바로는, 1. 얼마 있지 않은 자료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천재를 그저 기다리거나, 2. 서사 문학의 스케일을 낮춰 민담, 전설의 적극적인 활용을 꾀하는 미즈키 시게루의 방편, 3. 알타이(?) 문화권의 신화, 서사와 비교하여 보다 확장된 세계관 안으로의 편입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방안이 있을 수 있지만 저로서는 생각이 안나고 현실상황이 처참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제 안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연구자의 삶을 사시면서 좀 더 방대한 자료의 출처 혹은 문화적인 원천을 찾으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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