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그리고 안막과 최승희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한 커플의 이야기
채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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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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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안성 꽃뫼마을,
안막(安漠)과 최승희(崔承喜)는 그곳에 깊은 뿌리가 있으며 한국 문화와 예술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한국 현대 무용사에 큰 획을 그었고, 안성이라는 고장에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1910년 안성에서 태어난 안막은 본명이 안필승이며, 죽산 안씨로 유서 깊은 가문의 자제였습니다. 그의 아내, 최승희 역시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주 최씨 가문의 일원으로 양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두 사람의 배경은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틀을 대변하며, 이들이 공유한 가치관은 그들의 예술적 추구에 깊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안막과 최승희는 1931년 문학인 박영희의 중매로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단순한 결합이 아닌, 서로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안막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클럽 활동으로 일본에서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는 등,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였습니다. 최승희는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이시이바꾸 무용연구소에서 무용을 공부하며, 이후 세계적인 무용가로 거듭났습니다.
최승희의 무용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공연은 동양적 요소와 서구의 현대 무용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1939년 파리에서의 공연은 조선의 전통 춤과 음악을 유럽 관객에게 소개하며 문화적 교류의 중요한 장을 마련했습니다.
안막과 최승희의 예술적 여정은 안성 꽃뫼라는 그들의 뿌리와 깊은 연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커플은 무용과 문학이라는 두 예술 분야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동시에 한국 문화의 국제적 전파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안막과 최승희의 삶은 안성이라는 고장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사에 남긴 발자취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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