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656호)

경순왕의 막내아들이 머물렀던 화엄종 사찰의 탑

원영혜 전문기자 승인 2024.11.14 19:23 의견 0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법수사의 탑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한 법수사지(法水寺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지는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하여 자리잡고 있다. 사지는 주변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높은 위치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아주 좋다. 부석사와 같이 동쪽을 향한 가람배치에서 화엄종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935년(경순왕 9) 10월 경순왕이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에게 국서를 보내 고려 태조에게 항복을 청하자, 막내 아들 계자(季子)는 화엄종(華嚴宗)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하였다. 후에 법수사(法水寺)와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다고 한다.

석탑의 높이는 5.8m이며, 상․하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양식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하대중석의 각 면에는 안상을 3개씩 음각하였다. 기단부는 전체적으로 보면 하층기단이 전형적인 신라석탑에 비해 높다.

탑신부는 1~3층 탑신석은 단일 부재로 네 모서리에 우주를 양각하였다. 1층과 2층의 탑신석 상부와 1층 옥개석 하부에는 사리공을 설치해 놓았다.

9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석탑은 탑의 규모가 작아진 점, 지붕돌의 치켜올림이 지나치게 큰 점, 기단과 탑신에 인왕상 등의 장엄이 나타나는 점, 층급받침이 5단에서 4단으로 축소되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기단이 높고, 안상이 음각된 점 등의 9세기 후반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5단인 점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찰의 창건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법수사지의 제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우수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안동 옥동삼층석탑, 인제 한계사지 남삼층석탑 등의 하층 기단에서 3개의 안상이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형미가 매우 우수하다.

하층 기단부의 안상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아래층 기단은 높은 편이다.

5단의 옥개받침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져놓고 있다. 지붕돌은 얇게 만들어졌으며 모서리를 치켜올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연꽃 석조물

연꽃모양을 조각해 놓은 것으로 석등받침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설명이 없다. 석탑과 너무 가까이 있어 원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이나 코끼리상의 안상과 함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듯하다.

원영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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