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기억을 품은 광천 시민아파트,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 민주화운동의 성지, 광천 시민아파트
- 국가유산지킴이의 역할과 기대

한병기 선임기자 승인 2025.01.21 00:34 의견 0
원주민들의 이주가 진행되는 가운데 아직 이주하지 못하고 있는 시민아파트 주민들이 살고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의 광천 시민아파트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이자 광주 시민들의 삶과 기억을 품은 공간이다.

광천동은 일제강점기 이전 ‘새방천’으로 불렸으며, 1947년 ‘광천동’으로 개칭되어 역사를 이어왔다. 이름처럼 빛나는 하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광천동은 일제강점기의 종연 방직공장, 광복 후 공장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거주지, 그리고 6.25전쟁 이후 피난민과 저소득층이 모여든 달동네로 변모하며 고단한 삶의 흔적을 남겼다.

1990년, 2000년에 북적이던 광천동 골목(네이버 캡처)

그러나 재개발로 인해 이제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1969년 건립된 이곳은 광주의 최초 연립 시민 주택으로, 협소한 공간과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상징했다. 또한, 5.18민주화운동의 거점이자 들불야학의 중심지로 민주화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옛 안드레아교육관(들불야학 공간)에서 바라보는 시민아파트

▶ 민주화운동의 성지, 광천 시민아파트

광천 시민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5.18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78년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시작된 들불야학의 교사들(윤상원, 박기순)은 이곳에서 민중 계몽과 연대의 불씨를 피웠다.

시민아파트의 공동주방의 모습(네이버 캡처)

5.18 항쟁 기간에는 투사회보 제작 등 민중 언론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의 헌정곡이다.)이 탄생한 장소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대건안드레아교육관 마지막 출입문 건물과 5.18사적지 표지석

▶ 재개발 속의 갈등과 보존 노력

2012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광천 시민아파트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역사적 공간의 보존과 원주민들의 재정착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중심에 있다. 들불야학 터로 사용되었던 아파트 나동은 보존되어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체험관으로 활용될 예정이지만, 많은 추억과 역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은 텅비어버린 광천동 거리

▶ 국가유산지킴이의 역할과 기대

광천 시민아파트의 재개발은 단순히 낡은 건축물을 철거하는 것을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국가유산지킴이는 소외된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며, 광천 시민아파트와 같은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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