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문화재지킴이 스터디 활동 7년간 이어가
장성군 영천리 방울샘, 제봉 고경명선생 신도비, 묘소 등 답사
김오현 시민기자
승인
2023.03.02 14:09 | 최종 수정 2023.03.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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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문화재지킴이 B조 회원들 중심으로 매월 주단위로 주야근무가 진행되는 근무여건 속에서도 우리지역 문화재를 알고, 살펴보고, 지키기 위해 매주 주간 근무 주 화요일마다 스터디 공부를 2016년 5월부터 현재(7년째)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번주 스터디 답사는 장성군 영천리에 있는 방울샘(전라남도지정 기념물 제186호), 제봉 고경명선생 신도비(전라남도지정 기념물 제241호), 묘소 등에서 현장공부를 하였다.
◆장성 영천리 방울샘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
방울샘은 봉황산과 제봉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오동촌 입구에 있다.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 하여 방울샘 또는 방울 시암 즉 영천(鈴泉)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샘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동네 공동 우물인 이 샘은 500여 년 전 용이 승천한 늪이였다고 한다.
옛 기록을 살펴 보면 이 샘이 영험하여 가뭄이 들면 이 샘에 기우제를 지냈고 물 색깔의 붉기도 하고 뜬물 같이 희기도 하여 이것으로서 세상일을 예측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천재지변 등이 일어날 때에는 황토물이 나오고 대풍년 같이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흰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샘 안의 물고기는 모두 오른쪽 눈이 먼다고 한다. 심지어는 비록 다른 물에 있던 것도 이 샘에 들어 오면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입게 된다 하여 이를 경계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오동촌의 주민들은 이를 신성히 여겨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 2곳 있는 당산나무의 당제와 함께 이 방울샘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방울샘은 지층 구조상 지질습곡대에 의해 지표 가까이에 노출된 지하 대수층이 지표에 가장 가까운 지역 위에서 형성되어 있고 지질은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지형적인 위치와 석회암의 화학적인 변화 때문에 샘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거나 색깔이 가끔씩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문화재청 자료)
◆장성 고경명신도비
주소: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430-2
장성 고경명 신도비는 충렬공 고경명(1533~1592) 선생의 생애, 행적을 기록한 비로 귀부, 비신, 가첨석를 갖추고 있으며 건립연대는 18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비에 적힌 글은 영의정 윤두수의 아우로 형조ㆍ이조ㆍ예조판서를 지낸 윤근수(1537~1616)가 지었으며 글씨는 제봉의 7대손이며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수촌(水村) 고정봉이 썼다고 전한다.
충렬공 고경명 선생의 자(字)는 이순(而順), 호(號)는 제봉(霽峰), 본관은 장흥이며, 동부승지, 대사간을 지낸 맹영(孟英)의 아들로 1552년(명종 7년) 진사시, 1558년 문과에 장원하여, 호조좌랑, 세자시강원사서, 형조좌랑, 영암군수, 승문원판교, 동래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담양에서 6천명의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 금산에서 차남 인후(因厚)와 함께 전사하였으며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렬이다. 고경명 장군 및 아들들의 묘는 당초에 화순에 있었는데 1609년 3월 현 위치인 장성읍 영천리 오동촌으로 이장하였으며 신도비는 묘 입구에 위치해 있다.
(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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