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와 왕십리

무학대사와 왕십리의 지명 유래
'무학'과 '도선'이 들어간 이름이 많은 왕십리
무학대사와 관련된 지명, 봉우리, 절 터 등을 잘 보존하여 후세들에게 계승

이필열 승인 2024.01.18 21:18 의견 0

성동구 왕십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과 함께 60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 온 오래된 동네이다. 1392년 건국초기에 무학대사의 천도설화에서부터 왕십리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왕십리는 도성 안처럼 거리가 번성하지 않았고 왕십리평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들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성과 십리 거리에 위치하여 채소등의 생활 필수품을 도성안에 공급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고 한동안 고려의 국도인 개경에 머물렀으나, 여러가지 악재로 명분이 떨어지자 수도를 옮길 구상을 했다. 새 도읍의 후보지로는 계룡산 신도안, 서울 서대문구 지역이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한양이 후보지로 확정되었다. 태조는 무학대사에게 도읍 자리를 부탁하여 무학은 서울 일대를 다니며 풍수에 좋은 적당한 도읍 자리를 찾고 있었다.

왕십리란 지명 역시 무학대사가 수도를 정하려고 이곳까지 와서 도선대사의 변신인 늙은 농부로부터 십리를 더 가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왕십리(往十里)’라 불린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래서 왕십리에는 지명이나 학교 이름에 무학도사의 ‘무학’이나 도선대사의 ‘도선’이 들어간 이름이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도선동’이라는 지명이 있고 ‘무학여고’라는 학교도 있다.

도심속 아파트 숲에 솟아있는 무학봉근린공원, 무학봉(해발 90.1m)에 무학테마공원이 조성되어 무학대사와 왕십리 지명에 얽힌 설화가 새겨진 조형물이 있다.


중구 신당동과 성동구 왕십리동 경계에 낮고 조그만 뒷동산이 솟아 있다. 이 산봉우리는 ‘무학봉’(해발 90.1m)으로 무학대사가 다녀간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새 도읍을 물색해 달라는 청을 받은 무학대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 이 지방의 지형을 살펴보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 무학봉은 북쪽으로는 청계천까지, 남쪽은 매봉산, 응봉산까지 이어졌었는데 도시개발로 이제는 조그만 뒷동산이 되었다. 산 남쪽 자락에는 고찰이었던 안정사(청련사)가 있었으나, 2009년 양주로 이전을 했다. 무학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드려서 지금의 경복궁터를 선택했다는 청련사는 이곳에 옛터만 남기고 현재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현재는 ‘무학봉근린공원’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2005년부터 산책로, 쉼터 등이 조성되었고, 무학대사 테마마당에는 무학대사와 왕십리 지명에 얽힌 설화의 이야기가 새겨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와 함께 도읍을 정하면서 왕십리 지역에 남긴 흔적들로는 ‘무학봉’ 이외에도, 청련사 옛 절터, 왕좌봉 옛터가 남아있다. 왕좌봉은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함께 앉아서 한양의 지형을 살펴봤다는 곳이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서 ‘동명초등학교’에 ‘왕좌봉터’표석이 세워져 있다.

무분별한 개발의 여파로 자취와 흔적만 있는 설화들이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개발후에 남은 흔적이라도 보존하고 관리하여 왕십리 미래세대들에게 우리의 조상들이 남겨준 지명, 봉우리, 절터, 표지석들을 잘 물려줄 의무가 있다.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