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를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 (시 '왕십리')

*1923년 '신천지'잡지 8월호에 시 '왕십리' 발표
*소월의 흉상과 '왕십리' 시비가 왕십리역 광장에 세워져 소월을 기림

이필열 승인 2024.01.20 17:30 의견 1

김소월(1902~1934)은 일제 강점기에 시를 쓴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이지만, 호인 소월로 우리가슴에 더 친근하게 닦아온다. 길지 않은 33년의 생애를 살면서 우리에게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등 150여편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1934년 평안북도 고향에서 33세에 짧은 삶을 마감했고, 민족의 토속적인 정서인 '한'에 바탕을 둔 시를 쓴 민족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소월이 쓴 시 중에서 ‘왕십리’시가 있어서 왕십리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시 ‘왕십리’는 소월이 22살이던 1923년 8월호 ‘신천지’에 발표했고, 제목(왕십리)이나 발표시기(1923)로 볼 때 서울에서 배재고보 시절에 쓴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인 식민지 상황의 우울한 정서를 노래한 시 ‘왕십리’ 전문이다.

소월의 시 '왕십리'를 새긴 시비와, 소월의 흉상이 왕십리역 광장에 세워져 소월의 왕십리 사랑을 기리고 있다


비가 온다/오누나/오는 비는/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온다고 하고/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울려거든/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구름도 산마루도 걸려서 운다.

왕십리역 광장에는 김소월 흉상과 시 ‘왕십리’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원래 ‘왕십리’ 시비는 1997년에 제작하여 왕십리 네거리에서 소월아트홀로 옮겼다가 2010년 9월 15일에 지금의 왕십리 광장에 다시 세웠다.

소월의 여러 아름다운 시가 가곡이나 가요로 많이 불리고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비는 남산에 세운 ‘산유화’시비와, 왕십리광장에 있는 ‘왕십리’시비등이 있다. ‘국민시인’ 소월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비 내리는 날 왕십리역 광장에 있는 소월의 시비와 흉상을 찾아보는 감성을 가져 보면 어떨까!

성동구는 소월의 시비와 흉상 외에도, 성동구 구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이름을 ‘소월아트홀’로 명명해서 민족의 서정시인 김소월을 기념하고 있다.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