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추사 김정희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에서 추사 김정희의 '歲寒圖'를 감상
*청나라와 우리나라 문인들의 감상 글이 더해져 길이 15M의 대작이 됨
*176년 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가 2020년 기증을 통하여 국민 품으로 돌아옴
이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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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6 23:07 | 최종 수정 2024.01.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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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날 오후에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에 있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세한도 진품을 감상하러 갔다. ‘세한도(歲寒圖)’라는 뜻은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 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라는 뜻이다. 그림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의 장상무망(長毋相忘)의 인장을 찍음으로 이상적과의 변치 않는 우정을 보여준다. ‘세한도’ 원작의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33.5cm이지만, 당시 청나라 문인 16인의 감상 글과 1949년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의 감상 글이 담기며 길이는 14.7m의 대작이 되었다.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벼슬로 소위 잘 나가던 김정희는 권력 싸움에 밀려나 제주도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중죄인의 유배형을 받아 세상과 등지는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 이때에 그의 제자로 중국을 드나들던 역관인 이상적(1804~1865)이 유배중인 김정희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학계의 소식들과 중국에서 많은 책을 전달해 주었다.
극도로 단절된 외로운 생활을 하던 추사에게 이상적의 책과 학계 소식은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추사는 제자 이상적의 한결 같은 마음을 ‘세한도’ 그림에 담았으며, 이상적의 변함없는 우정을 추운 겨울 날씨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를 했다.
‘세한도’는 집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주변을 텅 빈 여백으로 마무리하여 최고도의 절제미와 간결함 보여주고 있다. 거친 종이위에 칠한 대담하고 섬세한 붓질로 유배지에 있는 추사의 쓸쓸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먹의 농담과 거친 붓질 그리고 단순한 구성 등이 추사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한도’는 네 부분의 두루마리로 꾸며졌다. 첫번째 두루마리는 당시 소장하고 있던 김준학(1859~1914)이 제목과 시를 적어 넣었고, 두번째 두루마리에는 ‘세한도’그림과 제작배경이 종이에 줄을 쳐서 쓰여 있었고, 세번째 두루마리에는 청나라 문인 16인이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적은 감상 글이, 그리고 마지막 두루마리에는 1949년 당시 소장자 손재형이 세 사람에게 ‘세한도’를 보여주고 그들이 쓴 감상문이 적혀 있다. 제자 이상적은 1844년 10월, 7번째 북경을 갈 때 ‘세한도’를 가지고 갔다.
‘세한도’는 19세기 후반 이상적의 제자인 역관 김병선에게 전해졌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김준학에게 전해졌다. 김준학은 ‘세한도’ 앞쪽에 제목과 시를 쓰고, ‘세한도’뒤쪽 청나라 문인들 감상 글 사이에 두 차례 자신의 시를 적어 넣었다. ‘세한도’는 김준학을 거쳐 1930년대에 일본인 후지스카 지카시가 소장하게 되었다. 1944년 손재형은 일본에 가서 후지스카 지카시로부터 ‘세한도’를 돌려받았다. 그는 세한도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1949년 세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글을 받았다.
이후 ‘세한도’는 개성 출신 사업가 손세기(1903~1983)씨 손으로 넘어갔고, 그의 장남 손창근 선생이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을 하여 이제는 우리 모두의 “세한도’가 되었다. ‘세한도’는 1844년 바람 불고 추웠던 제주도에서 추사가 제작한 이후 176년 동안 여러 명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한도’의 감동과 교훈을 현세대와 미래세대들이 함께 누리게 되었으니 민족의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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