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실상사 석장승(南原 實相寺 石長승)이 3개만 있는 이유?

1969년12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1936년 홍수때 만수천으로 해탈교앞 1개 유실됨(2014년 .연구회에서 다시 만듦, 사찰이나 지역간의 경계, 이정표, 수호신 역할,

방일섭 시민기자 승인 2024.06.28 18:48 의견 3

남원 실상사로 가는 길목에 해탈교를 건너기전에 1기, 건넌후 2기의 석장승이 있다. 다리 건너기전 우측 1기는 1936년 홍수로 유실 되었다. 지금 있는 석장승은 다시 만든 석장승으로 지정된 유적은 아니다.

실상사 석장승

즉, 남원 실상사 해탈교를 건너기전 좌측 1개와 건넌후 2개가 국가유산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건너기전에 우측에 있는 돌(石)장승은 성신석조각 연구회에서 2014년에 새로 만든것이다. 지금 남원 실상사에는 4개의 석장승이 자리잡고 있다.

해탈교 건너서. 석장승


석장승들의 크기는 높이 2.5m~2.9m, 너비 40~50cm 가량이다. 모두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으며 큼지막한 주먹코와 튀어나온 둥근 눈, 커다란 귀가 특징적이다. 대장군의 기단석(基壇石)과 뒷면의 기록에 의하면, 몸체에 각각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글자와 '옹정삼년을사삼월입(雍正三年乙巳三月立)'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아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해탈교 건너기전 좌측의 '옹호금사축귀장군(雍護金沙逐鬼將軍) 석장승의 해학적 모습


석장승은 보통 남녀로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의 장승은 모두 남자형태이다.

해탈교 건너서 있는 석장승

남원 실상사의 석장승은 사찰을 수호하는 장승이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3기가 조성연대가 밝혀져 있어 석장승의 편년을 알수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실상사는 평지에 있는 사찰이다 보니 절은 왜의 침입으로부터 속수무책 이었다. 정유재란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탔다. 이후 겨우 중건되었지만 유생들의 방화로 또 불탔다. 해방후에는 빨치산 부대가 지리산 산간마을 주민들을 실상사 근처로 이주시키고 산등성이를 무상으로 분배하여 절 주변의 무성했던 송림을 초토화 했다.

보광전내 동종은 왜구로부터 안전을 바라며 조성한 신령스런 물건(靈物)이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3기 모두 비슷한 크기와 외모를 가졌다.

(2024.6.1. 필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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