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나그네들은 어디에서 숙박을 했을까!

-한양 4대원 : 보제원, 홍제원, 이태원 그리고 전관원 (지금의 성동구 행당중학교 정문)
-전관원은 살곶이다리 서북쪽에 위치(동국여지승람)

이필열 승인 2024.07.17 07:02 의견 0

조선시대에 팔도를 누비며 ‘대동여지도’ 지도를 만든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어디에서 하루의 고단한 몸을 뉘었을까! 1392년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고 1394년 조선의 수도를 ‘한양’에 천도하면서 사람들이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 시대의 나그네들이나 여행객들이 묵었던 숙소는 어떤 시설들이 있었을까?

조선시대 숙박 시설은 유숙(留宿) 민박(民泊), 역관(驛館), 원(院), 영빈관(迎賓館), 객주(客主), 주막(酒幕)등의 이름이 보인다. 일반 여행자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숙박시설로 원(院)이라고 불려서 오늘날 곳곳에 지명으로 남아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역(驛)은 중앙과 지방간의 문서 전달, 관료들이 공무로 여행할 때 마필의 잠자리나 먹이 등을 제공하던 곳 이다. 원(院)은 주로 공용 여행자의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역(驛)가까이 설치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1,310개소의 원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전관원터, 조선시대 일반 길손이 머물 수 있던 서울 근교 네 숙소(四院)의 한곳이라고 씌어 있다.

서울 근처의 원은 동대문 밖의 보제원(普濟院), 서대문 밖의 홍제원(洪濟院), 남대문 밖의 이태원(梨泰院), 그리고 광희문 밖의 전관원(箭串院)이 있었는데 이것을 한양 4대원이라 한다.

‘전관원이 살곶이다리 서북쪽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자리는 살곶이다리 서북쪽 중랑천 북쪽 언덕이다. 지금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행당 중학교 정문이다. 행당 중학교 정문에는 ‘전관원터’의 표석이 세워져 있고 ‘조선시대 일반 길손이 머물 수 있던 서울 근교 네 숙소(四院)의 한곳’이라고 씌어 있다.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행당 중학교 정문의 위치가 조선 시대에 전관원이 위치해 있던 자리고, 지금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전관원(箭串院)은 ‘나루를 건넜으나 도성 문을 닫는 인정(종)이 울리기 전에 도성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나그네나, 파루(종)에 따라 도성문이 열리는 시각보다 더 이른 새벽에, 곧장 나루를 건너서 먼 시골로 가려는 나그네들이 묵어가던 여관이었다. 조선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원대한 꿈을 꾸고 팔도를 누볐을 고산자 김정호를 생각하면 조선 시대의 숙박시설이 연상된다. 과거에 숙박시설이 있었던 지명은 퇴계원, 이태원, 조치원처럼 끝에 원(院)자가 붙어서 숙소의 뜻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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