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 콜럼버스
제목 : 1492: The Conquest Of Paradise(1992)감독 : 리들리 스콧주연 : 제라르 드파르디외, 아만드 아산테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새로움은 뭔가 신비함이 깃들고, 뭔가 가능성이 있고, 뭔가 꿈을 꾸게 만드니까. 설사 악몽일지라도---.
콜로부스 일행은 이제 길고 불안한 항해를 마치고 새로운 땅에 도달하였다. 천년 가까이 지속된 구세계가 쳐 놓았던 냄새나는 검은 커텐들을 살짝 들추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보여주었다.
모래사장에 엎어진 채 흙향기를 싫토록 맡고난 그들은 총과 소금기에 녹슨 칼로 무장한 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이미 육지를 발견해서 살아남으려는 소박한 뱃사람들의 눈빛이 아니라 탐욕과 불안 적대감으로 가득 찬 정복자의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녹색덩어리 같은 숲속위로 간간히 보이는 하늘로 알룩달룩한 극락조들이 푸득거리며 날아간다. 개울물이 낡은 장화를 적시며 콸콸 흐른다. 유럽인들이 처음 본 신세계의 자연은 이렇게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한발자욱 한발자욱 걸으며 숲속을 들어가는 그들의 눈에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적대감이 아닌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이러한 낯선 만남은 다행스럽게도 호기심과 우호적이었다. 서로 살결을 만져보고 뜻모를 웃음소리를 내는 가운데 두 종족은 이내 곧 친해졌다.
콜롬부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에덴동산을 발견했다. 인류의 처음모습이다.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아니라 설득이 필요하다.--”라고.
그런데 에덴동산에 사는 그들을 왜 개종시켜야 된다고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그들의 신념을 존중하고 약탈과 강간은 엄히 다스린다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성직자의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황금조각을 발견한 백인들은 비가 퍼붓는 계곡에서 사금을 채취하지만 한명의 대원을 독사에 잃고, 금 몇 조각을 얻는데 그쳤다. 7개월간을 해안선을 탐사하면서 실망과 희망을 되풀이하던 그는 1493년도에 39명을 남겨두고 금의귀향을 했다.
스페인의 궁정 안, 그가 여왕의 면전에서 담배를 처음 소개하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이제 스페인은 제국이 되었고, 폐하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 그들은 신께서 창조한 그대로 삽니다.”
“ 신이라니” 여왕의 반문에 일순 긴장감이 실내를 채운다.
“ 신이란 자연입니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면서 누군가가 질문한다.
“황금은 얼마나 얻었나요?”
“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많습니다. 이제 더 많은 배와 선원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보고는 끝이 났지만, 그는 이미 구세력과 신세력, 종교와 자연과학, 교회와 왕권. 귀족과 평민 --. 이런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그는 자기를 둘러싸는 질시와 시기 속에서 벗어나려고 떠날 준비를 분주히 한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을 느끼면서 자기를 떠나도 좋다고 말하는 콜롬부스. 머리칼이 새까만 베아트리체는 사려깊은 표정과 깊은 눈길을 주며 대답한다. “당신은 스스로 사는 삶을 선택했고, 난 그런 당신을 선택했어요.”
항구.
어선들이 드문드문 드나들고, 어부들의 비린내 밴 발자욱만이 간간히 들리던 좁디좁은 항구는 갑자기 낯선 사람들로 넘쳐났다. 신세계행 배에 타겠다고 유럽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희망과 의욕, 아우성이 이곳을 신세계로 만들고 있었다. 대장장이 목수 농부 의사 신부 심지어는 이들을 감시할 귀족까지. 이들이야 말로 운명을 개척하고, 유럽사를 다시 쓰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콜롬부스 일행은 또 바다를 건너가 1493년 11월 28일 서인도 제도에 상륙했다.
말을 처음 보는 인디언들은 아지 못할 예감에 부르르 떨었다. 남겨두고 간 대원들은 죽었고, 분노한 군인들은 살육전을 원했지만, 콜롬부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라고 선언하면서 정착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모여 우선 교회를 짓고 배에 싣고 온 종을 매단다. 문명의 힘과 주님의 뜻을 전하려고.
원주민들을 동원해서 요새를 짓고, 또 광산에서 황금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결국 귀족들의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리더격인 묵시카가 원주민의 손목을 잔인하게 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광산노동자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백인들을 죽였다. 호전적인 구후니 부족들과 싸움을 벌이면서 콜롬부스는 묵시카를 연금상태에 가두면서 원주민들의 동요를 막아보려 한다. 한편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한 묵시카는 쫓기다가 벼랑위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친다. “4년이나 됐지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우린 실패했다.” “ 넌 하찮은 존재야. 우리 귀족은 영원하다.” 반란자들은 모두 묶인채 올가미에 묶여 죽는다.
‘기독교인과 이방인을 똑같이 취급하는군요’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귀국을 원하는 신부에게 그는 말한다. “우린 신세계를 원합니다. 모두 새로운 세계를 원합니다.”라고. 하지만 모든 것은 실패였다. 동생들마져 동요하는 상황에서 “낙원과 지옥은 한 세상에 있는거야.”라고 소리치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없는 절망감이 모든 이들을 휩쓸고 있다.
하리케인이 불어온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돌멩이들이 구르고, 사람들이 혼비백산한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서 바다가 들썩거린다. 모든 게 날린다. 종탑이 쓰러지고, 신세계의 초석인 교회벽이 무너져 내린다. 벼락 맞은 십자가 밑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 콜롬부스. 그 혼돈과 광란의 세계의 한 저편으로 머리를 자른 우타판이 사라져 간다. 그가 만난 첫 인디언, 서양에 첫 소개됐고, 첫 개화인인 우타판 마져 이젠 떠나는 것이다. “우타판. 돌아와” 절규하는 그의 귀에는 “이젠 우리말을 배우시죠”라는 냉소어린 음성이 들린다. 낙원건설은 실패로 돌아갔고, 신살바드로에는 새로 파견한 총독이 상륙했다. 냉소적인 그는 놀라운 소식을 두 가지 전한다. 하나는 그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대륙을 ‘아메리코 베스푸치’라는 이태리인이 발견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본국소환령이다.
1501년 스페인의 카스티유 감옥.
거인이 우리에 갇혀있다. 무지와 비겁함으로 봉인한 세상을 처음으로 열어놓고 그것을 싫컷 누린 사람, 가장 너른 바다를 항해한 자유인이 이제 감옥에 갇혀있다. 난 그가 크게 절망했을까? 이미 그는 실제건 관념적이건 지식에서건 그런 우리 속에서 충분히 살아왔고, 그걸 이겨냈으며, 또 그 우리의 철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우리 속에서도 울부짖지 않고 차분히 다음 항해를 계획하고 있었다.
눈이 봄날 벚꽃처럼 활 활 날리는 날. 철문이 슬며시 열리고, 그곳을 걸어나온 그는 여왕의 방으로 들어갔다. “풀어줄 이유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야심찬 정치가인 여왕이 안스런 눈길로 쳐다본다.
“ 마지막으로 신대륙을 탐험하고 싶습니다.. 죽기전에”
“그래 그럼 새로운 항해를 허락하노라”
“그런데 신세계는 엉망이라고 하오?.”
“ 그럼 구세계는 완벽한가요?”
돌아서는 콜롬부스와 바라보는 여왕의 모습이 한 눈에 잡힌다. 그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역사는 늘 두 사람을 함께 말하고 있다. 용기있고, 자유로운 두사람을.
바람이 분다. 궁전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어둠까지 먹어 하늘이 스산하다. 간간히 살결을 내비치는 구름만이 빛이 있음을 알린다. 그를 감옥에 집어넣은 재무장관이 의기양양하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몽상가야”
“ 그런가요? 밖을 보시오. 당신이 보는 건물 탑 궁전 문명---. 이 모든 걸 만든 건 나 같은 몽상가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당신과 나는 같아질 수 없소. 난 해냈고, 당신은 한 것이 없오”
그가 세월을 보내는 어느 날
대학에서는 쎄미나가 열리고 있다. 콜롬부스가 자기 계획을 발표했을 때 조롱거리로 삼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 당사자들이 새로운 지리적 진리를 발표하고 있다.
“ 산살바드로는 1492년 스페인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스페인의 바다에서 산토도밍고가지는 750해리로 밝혀졌습니다.”
그의 공적을 송두리째 빼버린채 말하고, 부정했던 가설들을 마치 당연한 진리라는 듯이 발표하는 그들의 눈빛은 오만에 차있고, 입가에는 권력을 장악한 구세력들의 조롱이 번져 나온다. 콜롬부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위선과 거짓. 그게 그 시대였다. 아니 늘 시대의 전환기에는 어디서나 다 이랬다. 모나리자의 야릇한 표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런 심정이었을 것 같다.
안달루시아의 평원이 따뜻하게 데워진 어느 날. 콜롬부스는 어렸을 때 작은 아들을 바닷가에 데리고 나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설명해준 것처럼, 그의 인생을, 그의 탐험을 차근차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은 이제는 듣는 대신에 꼼꼼하게 종이위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콜롬부스라는 거인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해져 온 것이다. 1502년 그는 파나마에 도착하여 태평양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는 그가 발견한 곳이 인도가 아니란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그게 무어 대수인가. 그건 남은 자들의 몫이었는데. ‘인생이란 우리의 꿈 이상으로 기묘한 것’같다는데, 정말 그는 기묘한 삶을 살아간 것 같다. 그 사람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그 너른 대륙에서, 그리고 그가 에덴의 동산이라고 표현한 신세계에서 주인인 인디언들은 천천히 살육됐다. 신의 단호한 의지와 성스러운 십자가 밑에서----.
꼭 400년 후인 1892년에 드볼작은 미국을 방문하고 감동에 겨워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500년 후인 1992년에 미국은 콜롬부스를 주제로 삼은 이 영화 ‘1492년’을 만들었다. 인류는 이제 또 신세계를 발견해야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저지른 우를 다시 또 범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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