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을지로에 2030 MZ 세대들이 몰려오고 있다. 을지로는 도심 한복판이지만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시간대가 형성되어 독특한 분위기의 상점들이 잇달아 선보여 요즘은 '힙지로'로 통한다.
을지로 한복판에는 종로구 세운상가와 이어진 대림상가, 청계천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일대에 인쇄소와 공업사, 조명상가 등이 밀집한 독특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청계천과 저 멀리 북악산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 오는 세운상가 3층 공중보행로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10월 2번째 토요일인 12일에 대림상가와 풍전호텔을 잇는 보행교에서 작은 지역 페스티벌이 열렸다.
중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한 이 축제에서 라이브 공연, 경품추천, 마술공연 등이 펼쳐졌다. 또한 인쇄골목 장인들의 협찬으로 레터프레스, DIY티셔츠 프린팅, 수제종이 만들기 등의 체험부스와 각종 와인시음, 먹거리 장터, 벼룩 시장이 펼쳐져 모처럼 보행로가 행인들로 북적였다.
이 날 2회에 걸쳐 해설사가 안내하는 을지로 공중보행로 투어가 있었다. 투어를 신청한 도보객들에게 해설사는 세운상가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시작했다.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되었던 상가아파트로 주상복합건물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이 일대는 원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소개지였다. 일제는 1945년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종묘에서 필동 대한극장 앞까지 이르는 도로를 비워서 소개지로 만들었다. 소개지는 공습이나 화재에 대비해 물자나 인원을 분산시킨다는 뜻이다.
소개지는 해방 이후 공터로 방치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몰려든 피난민들에 의해 무허가 판자촌으로 변신했다. 남쪽으로 길게 뻗은 1km에 달하는 도로에 판자촌, 천막촌, 사창가 및 여러 업종의 허름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은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그 위에 세운상가를 지었다. 당시 35세였던 건축가 김수근은 직육면체형 대형 상가 7동을 열차모양으로 배치했다. 세운상가라는 이름은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으로 김현옥 시장이 지었다.
하지만 애초에 설계했던 1km 길이의 공중보행로와 옥상정원은 자금 문제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고급아파트 이미지가 있어 연예인이나 고위 관료도 많이 살았지만 70년대 강남 개발이 이루어 지면서 재빠르게 쇠락했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가 만나는 청계천 위 보행로는 1980년대에는 빽판으로 불리는 복제판과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도색잡지와 불법 비디오 등이 거래되는 곳으로 유명했다. 현재는 까페, 서점 등 특색있는 상점들이 입점하고 젊은 에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과거의 낡고 거친 이미지를 발랄하게 바꾸고 있다.
요즘 점심 시간이 되면 대림상가 쪽 까페나 맛집 앞은 레트로한 분위기를 찾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2012년 박원순 시장이 당선 되면서 청계,대림상가에서 인현, 진양상가로 이어지는 공중데크를 조성해 1966년 당시 실현하지 못한 공중 보행로를 되살린 덕분이다.
이곳은 '을지로 루프탑'이라 불리며 각광받고 있다. 공중 보행교에서 보이는 일제강점기 때 낡은 건물부터 1960년대에 지어진 세운 세운상가 집합 건축물들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최첨단 주상복합 빌딩들이 한 눈에 보인다. 이러한 독특한 을지로만의 레트로하고 혼재된 분위기에 2030 세대들은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내년부터 공중보행로 1km 구간 중 삼풍상가와 호텔 PJ 사이의 250m 구간을 우선 철거한다고 발표했다.나머지 750m 구간은 나중에 세운상가를 허물 때 철거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도보 투어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때 '흉물'로 불리며 오명을 얻었던 거대한 건물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젊은 세대들의 공간으로 환영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림상가에서 진양상가로 이어지는 공중데크를 조성한지 1년 만에 다시 철거한다는 게 세금낭비란 반응도 나왔다. 앞으로 세운상가 일대의 과거 서울의 흔적을 조망하고 종로와 퇴계로를 잇는 공중보행로를 걷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관광객의 모드로 과거 서울의 모습을 뇌리에 간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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