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정자

반계정(盤溪亭)을 찾아서

장창표 논설위원 승인 2024.10.20 20:07 의견 9

밀양시 단장면 범도리에 있는 반계정은 산림처사(山林處士)로 명성이 높았던 여주이씨 반계 이숙(李潚, 1720~1807, 교위 이사필의 8세손)이 1775년(영조 51) 용천(龍川, 단장천) 언덕의 반석 위에 세운 아담한 정자이다.

어느 날 매사냥을 하던 중에 날려 보낸 매가 돌아오지 않아 매를 찾았던 곳이 지금의 반계정 자리인데, 이숙은 가만히 앉아 있는 매와 함께 흐르는 시내를 바라보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반계(盤溪)는 ‘시내를 받침대로 삼는다’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학문을 부풀리고 기만하면서 끝까지 출세 가도에 목을 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넉넉한 학문과 덕을 지니고도 출세보다는 산수에 묻혀 살면서 주변 사람에게 감화를 주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韓愈)는 ‘선비가 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하면, 산림에서 지낼 따름이다(士不得於朝 則山林而已)’라고 하였다.

이숙은 반계정 원운(原韻, 차운할 때 운자를 딴 시)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읊고 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작은 집 완성하고(十載經營小屋成), 난간에 기대어 낚싯대 드리우니 석양이 되었구나(憑欄垂釣夕陽生). 영산에서 캐는 약초는 신선을 불러옴이요(靈山採藥招仙侶). 고야에서 흘러오는 물은 속정을 멀리하도다(姑射連源遠俗情). 눈 어두워도 오히려 바둑판 길은 분간 하겠고(眼暗猶分碁局道), 귀먹어도 능히 반석에 떨어지는 여울 소리 들리도다(耳聾能聽石灘聲). 은자(隱者)들이여, 이곳 계산의 승경(勝境)을 말하지 말라(幽人莫說溪山勝). 다만 어부와 초부(樵夫, 나무꾼) 생활도 벼슬과 바꾸지 않으리라(直爲漁樵不換卿).」

반계정 전경

반계정 앞의 용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맑은 여울이 옥류(玉流)처럼 흐른다. 북으로는 정각산(正覺山)이 뻗어 있고 동남으로는 푸른 산들이 굽이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반계정이 앉은 곳은 천연의 반석 자리로 은자가 거처할 만한 장수처(藏修處)이다. 그래서 반계(盤溪)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공자의 시경(詩經)에 나와 있는 「고반의 시」에 근거하고 있다. “고반(考盤)이 시냇가에 있으니, 석인(碩人)의 마음 넉넉하도다”라고 읊었는데, 고반의 고(考)는 ‘이루다’는 뜻이며, 반(盤)은 반환(盤桓)으로 ‘맴돌다’라는 뜻이니, 곧 ‘은자(隱者)가 일정한 곳을 떠나지 않고 맴돌며 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석인은 ‘너그럽고 넉넉한 큰 덕을 지닌 은자’를 뜻한다.

치암 남경희(南景羲)와 죽리 손병로(孫秉魯)가 읊은 ‘반계정 12경’은 이곳 주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열두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남쪽 들판의 벼 향기(南郊稻香), 북벽의 기이한 암석(北壁奇巖), 앞 시내의 인월(前溪印月), 옛성의 낙조(古城落照), 각산 다리의 나무꾼 노래(覺棧樵歌), 마을에 뜬 밥 짓는 연기(泛村炊煙), 응봉의 봄꽃(鷹峯春花), 사암의 가을 넝쿨(舍巖秋蘿), 웅연의 저녁 비(熊淵暮雨), 어부의 불빛(漁汀夜火), 문암(門岩)의 귀승(門巖歸僧), 초록에 방목하는 소 떼(麓放牛)」

남경희가 쓴 반계정기(盤溪亭記)를 보면 ‘이숙은 맑고 간결하며 욕심이 없었고, 익히는 것과 숭상하는 것이 세속을 초월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베풀기를 좋아하여 이웃 사람들과 친척들이 궁핍하고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신의 재물을 다 내어 도와주었다고 한다. 일찍이 그는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관직을 탐하다가 공명(功名)의 길에서 무너지는 것과 자신의 분수를 알고서 본분을 지키며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낫겠는가?’라며, 과거(科擧)를 단념하고, 죽포 손사익(孫思翼), 태을암 신국빈(申國賓) 등과 도의로 교제하였다. 만년(晩年)에는 정각산 아래 석탄(石灘, 여울) 위에 반계정을 짓고는 당호(堂號)와 자호(自號)로 삼아 은거하며 88세까지 장수(長壽)를 누렸다. 그 당시에는 나라에서 덕망 높은 이가 장수하면 관직을 하사하는 수직(壽職) 제도가 있어 82세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통정대부)의 은전을 받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오복(五福)과 삼달존(三達尊, 나이, 벼슬, 미덕)을 겸했다고 찬송하였다.

반계정사

반계정은 후손들의 노력으로 중수(重修)를 거듭해 오다가, 199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는데, 정자의 왼쪽에는 안채와 대문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가 독서 하던 별당인 반계정사(盤溪精舍)가 있다. 반계정은 옛 모습 그대로이고, 주변 건물들은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지었다. 반계정 현판은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글씨로 진품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되어 있다. 정자 아래 왼쪽 암벽에는 1775년에 새긴 ‘주 이숙(主 李潚)’이라는 음각 글씨가 있다.

지금의 반계정 주변은 그 옛날의 수려한 풍광(風光)들이 많이 사라졌다. 강 건너 큰 길가에는 펜션들이 들어서고, 강물도 많이 줄어 용천의 빼어난 운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1959년에 발생한 사라호 태풍으로 강변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선 반짝이던 금빛 모래사장이 사라진 점이다, 오늘도 반계정 아래의 기묘한 형상의 암반(岩盤)에 부딪히고 휘감기는 저 강물은 아름답던 그 시절의 풍치(風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응천(凝川)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만 간다.

이곳 주인이 이숙임을 바위에 새긴 글씨


K-헤리티지 뉴스 논설위원 장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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