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비운의 침몰을 지켜본 운현궁과 대원군
이종철 선임기자
승인
2024.11.22 08:38
의견
0
조선 왕조의 쇠락을 지켜본 운현궁은 당대 권력의 심장부에서 이제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곳이 되었다. 조선왕 고종의 아버지이며 당대의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사가(私家)로 고종이 출생하고 12세로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潛邸)이기도 하다. 또한, 고종이 즉위한 후로는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개혁 등 대원군의 많은 업적을 이루었던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흥선대원군의 연보(年譜)가 있어 이를 바라보았다. 많은 공적(功績)에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그의 쇄국정책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좀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우리가 긴 오욕(汚辱)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이후 시대의 아픔을 알기 때문일 것이었다.
먼저 유물전시관에 들렀다. 전시관에서 운현궁에서 발굴된 생활유물과 조선 후기 역사적 사회변동에 관한 이야기를 만났다. 또한, 현존하는 건물의 축소모형을 보면서 그 시절을 상상하여 보았다. 운현궁은 대원군 집권 시절에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 노락당, 별당채인 이로당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시관에서 나와 이로당(二老堂)으로 왔다. 이로당은 안채의 용도로 건립한 건물로 여자들만 살 수 있게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이로당 안주인은 운현궁 전체의 안살림을 책임지었다고 한다. 건물을 사진에 담고 이리저리 들러보았다. 그 옆의 노락당(老樂堂)은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사대부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으며 지붕의 용마루를 받치고 있는 곳에 용 문양이 그려져 있어 건물의 권위와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종과 왕비 민(閔) 씨(氏)의 가례(嘉禮)가 있었으며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한 행사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걸어서 노안당(老安堂)으로 왔다. 노안당은 운현궁에서 사랑채로 쓰였던 건물로 대원군의 거처였으며 파격적인 인사정책과 중앙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 개혁 등 국가 주요 정책을 논의했던 곳이다.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과 노인들의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는 치국(治國)의 이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걸어 나오는 길에 만난 수직사(守直舍). 정문 바로 옆에 있고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었다. 당시의 운현궁은 지금보다 상당히 넓었을 뿐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1873년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실각하면서 운현궁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정치의 공간이었던 운현궁은 이후 대원군이 은거하며 석파란(石坡蘭)에 매진하였던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대원군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치적 부침을 거듭한 영욕의 세월을 함께하였던 운현궁을 바라보며 짧게 목례(目禮)를 하고 길을 나섰다.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 1898)의 본명은 이하응으로 고종 황제의 부친이다. 종친의 일원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세도 집안에 서예와 서화 등을 그려 바쳐 보신책을 구하였다. 하지만,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오르자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었으며, 안으로는 유교의 위민정치를 내세워 왕권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쇄국정책을 단행하였다. 또한, 서원을 정리하고 남인과 북인을 등용하였으며, 동학과 천주교를 탄압하고 박해하였다. 하지만 직접 며느리를 간택하였으나 며느리 민씨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왕비 민씨와 권력투쟁을 벌였으며 민씨 일족 및 고종을 폐출하는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하였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K 헤리티지 기자 / 자서전쓰기 외래교수 / 문화관광해설사- 2023년 경기도 대표 해설사
/ 영어강사,통역관/ 민방위강사/ 노인건강.치매강사. 교양강사
매홀역사문화포럼 단장 / 해외여행가이드 / 오지연구소장
저서 ; 두바퀴 오지탐험 . 바람같이 산 여자
KBS세상은넓다. SBS 오지기행. OBS 별난고수의 여행 -- 리포터
K-헤리티지뉴스
이종철 선임기자
visona@naver.com
이종철 선임기자의 기사 더보기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