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을사년 첫 지킴이 활동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에서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5.01.13 05:21 의견 0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서

2025 을사년 첫 지킴이 활동을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237번 길 33에 위치한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에서 실시하였다.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자리에 위치했던 조선시대 공북루 모형<김낙현 사진>

◆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체결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1910년 8월 29일부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 독립을 이루기까지 우리 국민들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운동이 계속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1차 조사 기념 김대중대통령 휘호

◆ 1919년 3.1 운동과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리나라의 양대 항일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
◆ 1929년 11월 3일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그 파급력이 폭발적이었다. 진원지인 광주에서 경찰은 물론 재향군인, 소방대원, 일본인 청년단까지 총동원돼 무차별 검거에 나섰지만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연일 ‘검거학생 석방’ ‘민족차별 교육반대’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거했고 이 시위는 12월까지 이어졌다.

◆ 1929년 11월 3일은 명치천황의 탄생기념일인 명치절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음력 10월 3일 국조 단군이 개국한 날이었다. 우리의 개천절에 일제의 신사에서 참배를 강요당했던 광주고보생들의 비통한 심경에 가해졌던 일본 학생들의 무례한 도전이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김낙현 사진>

◆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시위나 동맹휴학 등의 형태로 계속되어 전국적으로 194개 학교가 참가하였고 참가 학생 수는 54,000여 명으로 당시 전체 학생의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희생당한 학생 수는 퇴학 582명, 무기정학 2.330명, 검거당한 사람이 1462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였다. 또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파급되어 만주의 간도와 길림성, 중국의 상해, 북경, 그리고 일본에서도 조선인은 물론 일본인들까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격려하는 집회와 만세시위가 있었다.

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학생독림운동 이야기

◆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그 주체가 나이 어린 학생들이고 퇴학과 무기징역, 투옥 등 그 피해 규모가 방대하여 온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한 때 그 의의가 폄하되어 ‘학생의 날’로 기념되다가 2006년에 이르러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주변 정화활동

◆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주변 정화활동을 실시하면서 학생독립운동의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미래의 빛난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역사공부<김낙현 사진>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