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 느낌 ]106 밤을 깁다

흔들리며 명시조 감상 51

김명호 전문위원 승인 2024.03.20 07:38 의견 0

밤을 깁다

최은희*

잠 설친 숱한 밤들 조각조각 그러모아

덧대고 이어붙여 이불 한 채 짓고 있다

어둠 속 바늘땀마다 동살 훤히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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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최고의 명시조 중의 하나인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가 연상된다.
밤(夜)이란 추상적 개념을 ’밥을 깁다‘에서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보다 생생하게 형상화하였다.
누구든 불면의 밤을 겪었을 것이다. 황진이는 임을 그리워하며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밤을 특히 택하여 반절을 삭 뚝 나누어 함께 오래오래 밤을 지새우고 싶은 마음을 아주 육감적으로 표현하였다면, 최은희의 ”밤을 깁다 “에서는 요즈음 잠 못 드는 현대인들의 불안정한 정서를 시인의 따듯한 정서로 수많은 불면 속에서도 절망이나 질병이 아닌 불탄 대지에 새싹이 돋듯 희망 있게 표현 하였다.
현대시대는 불면의 시대다. 이제 불면은 고민할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할 벗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질병이나 고민이 아니라 벗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간다.

밤은 아마도 나의 피부 같은 천(비단?) 이리라.

그 내밀한 천으로 온전히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단이 잘 안되어 자투리를 남겼다. 아깝게도 수많은 미완성의 쓸모없는 파편들이다
그 못난 파편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애정을 보낸다. 그 숙명같은 못난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이어 이어 덧대고 깁고하여 쓸모있는 이불 한 채를 완성해 간다.
칡흑같은 밤이지만 못난 파편들이 어우러져 여명처럼 새 희망의 빛으로 가득하다.

이제 불면은 고통이 아니요 형벌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

*최은희 : 시조시인, 사단법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시조집 [흐미, 초원의 노래]

사진 김명호


글 사진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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