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절의 충신 정희선생과 농사직설 편찬자 정초선생을 모신 화담사

옛부터 꽃이 반발했다고 해서 화담이라 불렸다는 충.효. 학행의 가문 화담사를 찾아서....

김오현 시민기자 승인 2023.03.06 12:12 의견 0

화담사 [花潭祠]

▶ 위치 :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

▶ 종별 : 광주광역시지정 기념물 제18호(1993년03월20일 지정)


2019년10월 지킴이 활동 기념사진


광주광역시 화정동 화담사는 하동 정씨인 묵은공 정희를 주벽으로 그의 아들 문경공 정초, 손자 문절공 정수충과 약포공 정오도, 여흥민씨인 충장공 민제장을 모신 사우이다.

이곳은 옛부터 꽃이 많다고(군분)하여 화담이라 불렸다. 하동정씨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보성군수를 역임한 정화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화담사는 1735년(영조 11) 경사에 능하며 예법을 지키고 청렴 결백한 좌찬성 문절공 정수충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에서 출발하였다.

문절공 정수충의 영정은 1478년(성종 9) 장자인 보성공 정화가 이곳으로 오면서 가지고 온 것이다. 그 후 1776년(영조 52) 사우 건축을 발의하여 1784년(정조 8) 문절공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1796년(정조 20)에 광주향교 유회소의 발의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광주 출신의 충장공 여흥민씨 민제장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그리고 1809년(순조 9) 충청도 유회소가 발의하여 정몽주의 제자로 충절을 지킨 묵은공과 세종대에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에 업적을 쌓았으며 청백과 도덕이 높았던 문경공을 1910년 추가 배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에도 지붕을 덮고 제사만 폐하였다가 1905년 광주향교 유회소의 발의로 복설되었다. 1906년(광무 10)에는 광주 유생들의 발의로 광주 관찰사에게 상서하여 충효가 출중한 광주 출신의 약포공 정오도를 추가로 배향하여 현재의 틀을 갖추었다. 약포공은 송시열의 제자로 처음 광주 지산사에 배향되었으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서원이 철폐되어 조상들이 모셔져 있는 이곳에 추가 배향된 것이다.

전통놀이 승경도를 하는 회원들

이곳의 건물 배치는 제향 구역과 강학 구역을 구분하여 조성한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으로 가장 뒤에 화담사를 안치하고 그 앞에 내삼문인 양양문을 두었다. 이곳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동재와 서재를 두고 그 밑에 외인문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화담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앞 뒤에 마루가 있는 맞배지붕이다. 앞면의 마루는 개방되어 제향의식을 편리하게 한 사당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문은 굽 널을 둔 빗살문이며 겹처마이다. 이 지붕을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 모양이다. 앞면의 넓은 마루는 개방되어 제향의식을 편리하게 한 사당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배수로 청소하는 회원들

화담사는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충· 효·학행의 인물들을 모신 곳인데 근처에 사는 시민들도 절이라 착각하고 있는 현실에 우리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고, 알리는 문화재지킴이로써 더욱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주변 정화활동과 배수로 청소하는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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