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박지향)은 4월 4일(금)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중국 산둥대학(山東大學)과 「동아시아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의 상흔을 공유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에 있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인들과 연대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한국과 중국 측에서 각각 4명의 발표자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국제관계, 일본군의 전쟁 범죄, 전쟁에 관한 역사 기억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발표해, 그간 축적해 온 연구 성과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학술회의 일정표
쉬창(徐暢, 산동대학)은 “총검과 사탕”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일본군이 루시(魯西)·지난(冀南) 지역에서 수많은 아동을 잔혹하게 학살하였음에도 민간에서는 일본군이 아동에게 호의적이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모순적 현상을 분석했다. 전투시기의 여부, 전쟁의 경과, 아동의 나이, 지역에 따라 일본군의 태도가 상이했다고 결론내리고 한쪽의 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급했다.
박정애(동북아역사재단)는 중일 전선의 일본군 '위안부' 사례로서 이북 출신의 피해자 박영심 씨의 삶을 각종 사진과 자료를 통해 돌아본다. 중일전쟁 이후 난징(南京)의 위안소로 끌려갔다가, 윈난(雲南)성 쑹산(松山) 지역의 위안소에서 종전을 맞은 조선인 피해자 박영심 씨의 피해와 구제, 그리고 '진실 찾기' 속에는 남북한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 미국까지 연루되어 있다. 박정애 연구위원은 이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자'의 의무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위안부' 피해자 박영심의 이동경로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양지혜(대구교육대학)는 일본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1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이를 둘러싼 한국, 일본, 영·미의 기억정치와 역사논쟁을 분석한다. 그 결과 한국 학계에서는 강제동원 부정론에 대한 반박을, 일본 학계에서는 주민자치와 지역재생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세계유산의 활용을, 영미 학계에서는 일본정부의 국가주의적 유산정치에 대한 반박을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나타났다. 한편, 국제적 비교 연구의 부족과 피해자 증언이 부족하다는 점은 앞으로 각국의 연구자가 주목해야 할 지적이다.
손장훈(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역사 만들기' 과정의 사례로서, 1940년 허베이성에서 중국 팔로군이 일본군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백단대전(百團大戰)에 대한 딜레마를 다룬다. 백단대전은 대표적인 항일 전투로 꼽힘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국군 지도자 펑더화이(彭德懷)의 정치적 평가에 따라서 중국의 평가와 기억 방식이 달라져 왔음을 지적한다.
박지향 이사장은 오늘의 학술회의가 굴곡진 동아시아 근현대사 속에서 한국과 중국이 겪었던 역사를 비교하고 서로가 공유한 역사를 재발견하는 교류의 장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인한 두 나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교류와 협력,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24년 5월 산동대학과 한중 학술교류 활성화를 통한 상호 이해를 위해 MOU를 체결하고 젊은 연구자를 중심으로 방문 학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활발하게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히 위축되어 있는 한중 학술교류가 물꼬를 트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