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의 연지 전경(사진제공 국가유산청, 네이버 검색, 김오현)
해남 연동마을은 '흰 연꽃이 피는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백련동(白蓮洞)으로 불려온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조선 시대 어초은(漁憔隱) 선생이 연못에 심은 흰 연꽃에서 유래되었으며, 세속을 초월한 삶을 추구했던 그의 고결한 정신을 담고 있다. 또한, 녹우당(綠雨堂)에 자리 잡은 독특한 형태의 연못과, 마음 심(心)자 모양의 백련지(白蓮池) 동산은 단순한 조경을 넘어선 깊은 철학적 의미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백련동이라는 이름에 담긴 어초은 선생의 삶의 지혜와 이상, 그리고 녹우당 연못과 백련지(白蓮池) 동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의 연지의 모습들...
▶ 마을이름이 흰 연꽃마을(白蓮洞)로 불려지게 된 이유
해남(海南) 연동(蓮洞)마을은 '흰 연꽃이 피는 마을'이란 의미의 백련동(白蓮洞) 이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초은 윤효정(漁憔隱 尹孝貞, 1476~1543)선생은 연못에 흰 연꽃을 심고 마을 이름을 백련동(白蓮洞, 현재의 연동)이라 지었다고한다. 이는 어초은(漁憔隱) 선생이 학문과 수양을 중시하며,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 순리(順理)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즉, 세속에 살지만 세속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로운 유교적 군자(儒敎的 君子)의 삶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은 자신의 아호에서 볼 수 있듯이 고기잡고(漁), 나무하며(憔), 조용히(隱) 지내며 사는 삶을 보이셨는데 이는 무리함이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에 필요한 것을 나누고자 하셨다. 이는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 삼아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며, 더 깊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삶의 방식이었다. 번거로운 세속에 쫓김이 없이 유유자적(悠悠自適, 여유가 있어 한가롭고 걱정이 없는 모양이라는 뜻)하게 자연을 벗할 뿐, 자신을 보다 깊고 넓은 세계로 인도하여 자신을 심화시키고 확장시켜 마음과 세상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삶을 원했던 것 같다. 아무튼 선생의 삶은 하얀 백련처럼 맑고 깨끗했으며, 늘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재산을 나누고 아픈이들을 위해 약창고의 문을 열었다. 선생은 후손들이 이러한 삶을 기억하고 본받아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고, 그 마음을 담아 마을 이름을 백련동(白蓮洞)이라 정하였을 것이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의 심(心)자 모양의 인공 연못인 백련지의 사각 큰섬, 잦은 섬, 목교의 모습
▶ 녹우당(綠雨堂)의 연못(蓮池)
녹우당(綠雨堂)에 자리한 연못은 한국 고유의 변형된 방지(方池 ) 형태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학자들은 이 연못이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고대 우주관을 반영한다고 해석한다. 네모난 연못 윤곽은 땅, 곧 음(陰)을 상징하며, 연못 중앙의 둥근 섬은 하늘, 즉 양(楊)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는 만물의 생성과 국가의 번영,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초은(漁憔隱)선생은 연동에 터를 잡으면서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우주, 땅, 인간의 조화를 고려하여 연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연못 중앙의 네모난 섬에는 사방으로 탁트인 마루와 아늑한 방 한 칸, 그리고 푸근한 초가지붕이 어우러져 섬의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었다. 이 정자는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어 흔적조차 없고, 형식적으로 복원된 팔각정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아무튼 그 옛날 녹우당의 선비들은 백련의 향기가 넘치는 연못의 정자에 앉아서 정천(井泉)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 정자 옆의 고즈넉한 소나무 동산과 정자 건너편 들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결에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조상들이 남기신 지혜를 배우고 자연과 하나 되어 선비와 군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을 것이다. 어초은(漁憔隱)선생은 녹우당을 찾은 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에 마음 심(心)자 모양의 인공 연못인 백련지(白蓮池)를 조성하고 연꽃을 심었다. 그는 이 연못을 '마음무덤지'라고 불렀는데, 이는 속세에 대한 욕망과 미련을 묻어버리고자 했던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녹우당 앞의 탁 트인 벌판을 가로막는 소나무 숲은 비보(裨補) 기능을 수행하며 공간에 안정감을 더한다. 어초은(漁憔隱)선생은 자손들의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고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백련지(白蓮池)를 조성했으며, 주변의 덕음산(德蔭山)과 소나무 숲 또한 이러한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원래 백련동(白蓮洞)이라 불렸던 연동마을은 윤효정(尹孝貞)의 사상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며, 백련지(白蓮池)는 그의 철학적 사고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송림 숲 속에는 군데군데 구릉이 있는데 이
는 연못을 조성하면서 나온 흙으로 선계의 무
산 12봉을 조산한 것으로 추측된다.
▶ 백련지(白蓮池)동산이 "말 무덤"으로 부르는 이유
백련지(白蓮池) 동산은 연못을 파낸 흙으로 '마음 심(心)'자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맘(마음)무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하여 '말 무덤'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 선생이 백마도(白馬圖)를 그릴 때 말을 관찰하며 실사(實寫, 실물을 그대로 그린 그림)적으로 표현했는데,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리자 말이 죽어 묻혔다는 이야기와 연관 지어 '말(馬)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재 선생은 낙향 후 해남 연동보다는 현산면 백포에 주로 거주했고, 시력 문제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백련지(白蓮池)는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입구가 허한 것을 보완하고 좋은 기운을 모으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변의 해송 숲을 조성하여 탁 트인 지형을 보완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덕음산 아래 자리 잡은 녹우당은 백련지(白蓮池)와 해송 숲 덕분에 더욱 안정적인 터전이 되었으며, 윤씨 집안이 오랫동안 번성하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연동마을 입구쪽의 해송림 하부에 다수의 구릉은 선계의 무산12봉을 조산한 것으로 추측된다
해남 연동 마을의 백련동이라는 이름은 어초은(漁憔隱) 선생이 심은 흰 연꽃에서 유래되었고, 백련지는 단순한 연못을 넘어 음양오행 사상에 기반한 우주관을 담고 있으며, 어초은(漁憔隱) 선생은 이곳을 '마음 무덤'이라 부르며 세속적인 욕망을 내려놓고자 했다. 백련지(白蓮池) 동산이 '말 무덤'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시간이 흐르며 발음이 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선생의 백마도(白馬圖) 일화와 연결 짓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해남으로 낙향 후 시력 문제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백련지(白蓮池)는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약점을 보완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모으기 위해 조성되었다. 결국 백련동(白蓮洞)과 녹우당(綠雨堂)은 단순한 마을과 고택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하고자 했던 어초은(漁憔隱) 선생의 정신과 염원이 담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녹우당 일원의 매표소 자리는 서당께 라고 불러던 자리인 것으로 보아 서당이 있던 자리로 추측됨.
🔳 참고문헌
1. 나마스테, [녹우당의 연못 백련지 마음무덤 에 대하여...], 네이버블로그 '골프신의 블러그', 2010.
2. 화산, [해남윤씨 윤선도가 살았던 녹우당 해송림], 네이버블로그 '화산의 정원문화 연구소', 2017.
3. 윤춘식, [성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녹우당의 전인교육적 가치], 돌(덕)고개 연꽃농장,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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