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국악기 나각(螺角)의 모습(사진촬영 신안 세계조개박물관)
"뿌우~"하고 깊고 울림 있는 소리가 마치 바다의 울음소리처럼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전통 관악기, '나각(螺角)'이다. 수염고둥과의 나팔고둥 껍데기로 만들어지는 나각(螺角)은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재료와 인간의 지혜가 결합하여 독특하고 웅장한 음색을 자랑하는 특별한 악기이고, 뱃고동 처럼 소리가 널리 퍼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라의 뾰족한 끝부분을 갈아 입술을 대는 취구(吹口,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를 만들고, 때로는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거나 붉은 칠을 하여 멋을 더한 나각(螺角)은 그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연주 방식은 나팔과 유사하다. 입술 사이로 공기를 불어넣어 진동시키면 소리가 나는데, 신기하게도 소라의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진다.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활용한 악기이기에 더욱 특별한 울림을 선사하는 것이다.
피리정악 및 대취타(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의 행사 모습과 우표 나각 모습(사진제공 네이버검색)
나각류 악기의 역사는 놀랍게도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그림과 문헌에 보이며, 군대음악이나 신호, 불교의례, 농악 등에 사용되었다. 특히 삼국시대 고구려의 고분 벽화안악(安岳) 제3호분인 동수묘(冬壽墓)에는 나각을 연주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그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의식과 군사행진시에 고취악이 사용되었음은 ≪고려사≫ 악지(樂志) 용고취악절도(用鼓吹樂節度)에 기술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선전관청(宣傳官廳, 조선시대 왕의 측근에서 왕을 호위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관청)에 대취타(大吹打, 불고 치는 군악기에 북·장구·피리·젓대·해금이 취타에 합쳐진 것을 대취타라 함)가 있었고 오영문(五營門)과 각 지방의 감영(監營)·병영(兵營)·수영(水營) 등에도 각각 취타수가 있었으며 각 고을에는 소취타(小吹打)를 두었다고한다. 조선시대에는 군례악(軍禮樂, 임금의 거동 때나 군대의식 따위에 연주하던 음악)은 물론 임금의 행차, 성문 개폐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신호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에서 고대부터 사용하던 신호용 단
음 관악기인 나각(螺角), 덕흥리 고분벽화 기마 인물의 고각( 鼓角), 악학궤범의 나각(螺角)그림, 국조오례서례 권4 군례 형명의 도설 각뿔나팔 그림
19세기 말 서구식 군대와 군악대가 도입되면서 군대에서의 나각(螺角) 사용은 점차 사라졌지만, 그 아름다운 선율은 끊기지 않았다. 나각(螺角)은 궁중 연례, 종묘 제례악 등 국가의 중요한 의식에서 웅장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악기로 자리매김했다. 대취타(大吹打)와 같은 전통 군례악(軍禮樂) 연주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이며, 궁궐 관련 복원 행사, 일부 농악 등 다양한 무대에서 그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나각(螺角)은 나발(喇叭, 놋쇠로 만든 한국 전통 관악기)과 함께 저음의 긴 소리를 내며, 대취타(大吹打)의 장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각(螺角)의 소리는 매우 독특하여 다른 악기들과 구별되며, 대취타(大吹打)의 시작과 중요한 순간을 강조한다. 단순한 고둥 껍데기가 오랜 시간을 거쳐 한국 전통 음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악기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바다의 숨결을 담은 듯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음색,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나각(螺角)의 이야기는 우리 전통 음악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1795년 정조의 화성 행차를 기록한(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 일부, 피리정악 및 대취타(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나발을 연주하는 모습
🔳 참고문헌
1. 조운조, [나각 (螺角)],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4.
2. 오지혜, [국악사전 - 고동], 국립국악원, 2025.
3. 박우량, [세계조개박물관], 신안군,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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