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수욕장(海水浴場)
우리나라 해수욕장의 역사는 1920년대에는 해수욕장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곡과 강을 주로 찾았다.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전까지는 북한의 강원도 원산, 송도 등 해수욕장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해수욕장이었다. 생활이 어려웠던 1950년 ~ 1960년대는 가까운 시냇가, 한강, 근교 수영장 등에서 물놀이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60년 대 이후부터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해수욕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났다. 1965년 개장한 해운대해수욕장은 약 1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해수욕장으로 거듭났으며, 대천해수욕장은 1980년 ~ 1990년에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으로 꼽혔다.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설비가 구비되어 있는 바닷가를 해수욕장이라 한다. 지형상 해빈(海濱, 해안선 앞바다 쪽에 퇴적되어 있는 모래 또는 자갈 부분이 파랑 작용으로 인해 이동하기 시작하는 범위를 의미)이라 하고 영문으로 비치(beach)라 한다. 해수욕장으로 적당한 곳은 보통 모래나 고운 자갈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심이 완만하게 경사진 곳이며, 수온도 적당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지형과 수온 등 자연환경이 충족되고, 그 다음이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안전시설·탈의실·샤워실·숙박 시설 등이 갖추어져야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 시설이 편리해야 하는 것도 개발 조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환경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은 부산광역시 서구의 송도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적으로 약 330여개의 해수욕장이 있으며, 주요 분포는 강원도에 94개, 전라남도에 66개, 충청남도 51개 등이고 전라북도가 9개로 가장 적은 규모이다.
▶ 조선시대 지혜롭게 더위를 피했던 피서법
◾️옛 광주에 선비들의 더위 탈출법 -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
전라도 광주 지역 무등산 주변에 있는 환벽당과 식영정, 서하당 등에서 여름날 더위를 씻던 선비들의 모습을 담은 목판 그림으로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流濯熱圖)] 관련항목 보기는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의 문집인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 에 실려있는 목판화이다. 그림을 통해 11명의 선비들이 무등산 주변에 있는 누정인 환벽당(環碧堂), 식영정(息影亭), 서하당(棲霞堂)에서 모임을 하며 여름 더위를 피하는 조선 전기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으며, 선비들의 여름날 계산풍류(溪山風流, 맑은 물과 조용한 산을 찾아 말 없는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진정한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는 것)를 볼 수 있다.
1590년 여름, 광주 근교 담양의 식영정에서 김성원과 성산 일대에서 교류하던 16세기 호남 선비들의 여름나기 풍속인 탁열행사를 그린 그림이다.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을 통해 여름날의 시원함을 만찍하며, 동시에 음식을 통해 여름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조선선비들의 대표적 여름 세시풍속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피서법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조선시대 왕들은 도대체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조선시대 왕들은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궁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처럼 궁궐 안에서 그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단오선(단오를 기년해 나눠준 부채)을 부치며 얼음물에 담가 놓은 수박과 참외를 먹는 것으로 더위를 이겨냈다. 얼음은 왕실에서 나눠주던 귀한 물품 그런데 냉장고도 없던 시절, 한여름에 어디서 얼음이 나왔을까?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를 대비해 겨울에 강 등에서 얼음을 채취해 미리 얼음 창고인 빙고(氷庫, 얼음을 넣어 두는 창고)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셨다. 아주 귀한 물품이었던 얼음을 다루는 창고는 나라에서 운영했는데, 한양에는 종묘제사를 위한 동빙고, 신하와 어려운 백성을 위한 서빙고, 왕실 전용 얼음을 위한 내빙고가 있었다.
9대 임금 성종은 어린 시절 더위를 먹어 기절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더위 때문에 고생했다. 그의 여름 대책은 '수반(水飯, 물에 만 밥)을 먹는 것이었다. 임금이 먹었다고하니 뭔가 대단한 음식 같지만, 사실은 그냥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것이었다.
21대 영조는 신하들의 권유로 가을 보리로 만든 '특식'을 여름 건강식으로 삼았다. 그것은 고소한 맛이 나는 '미숫가루'였다. 영조의 손자인 22대 정조의 피서법은? 정조 임금의 말은, "더위를 피해 자꾸 서늘한 곳만 찾아다니다 보면
과연 만족할 때가 있겠는가? 지금 있는 장소에 지족(知足, 만족할 줄 앎)하고 참고 견디면 여기가 서늘한 곳이니라." 결국 '그냥 참는다'는 것이다. 왕들의 피서법이 의외로 소박하고 지나친 사치를 자제했다.
◾️ 정약용 선생의 더위를 물리치는 8가지 방법
요즘 여름철에는 '피서(避暑)'가 당연하지만 과거 선조들은 더위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고작 무더위에 대다수 백성들은 그저 부채질을 하고 통풍이 잘되는 모시 옷을 입거나 잠잘 땐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옆에 놓아 더위를 견디었다. 바닷가를 찾아 바캉스를 즐기는 것은 근대 이후에 생겨난 풍습이었고, 조선시대엔 대개 시원한 계곡을 찾았다. 아이들은 윗도리를 벗고 등목을 하거나 물에 풍덩 뛰어들기도 했지만, 어른 양반들은 체면상 그럴 수 없었다. 이때 이들이 즐긴 피서법이 탁족(濯足)이었다. 차고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가 온몸이 시원해지도록 하는 방법. 탁족은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이 그린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같은 여러 회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선비들의 정신 수양 방법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지금도 계곡에 가면 물에 발만 담그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가끔은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1762년 ~ 1836년)은 63세가 되던 1824년(순조 24년) '소서팔사(消暑八事)에는 더위를 물리치는 8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소나무 그늘 아래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 타기, 정자(亭子)에 모여 투호하기, 바둑이나 연꽃 구경하기, 매미 소리 듣기, 비오는 날에 시 암송하기, 달 밝은 날 탁족(濯足)하기 등을 권했다. 우리 선조들은 더위에 '맞서기' 보다 더위를 '잊는' 차선을 택했던 것이다.
▶ 보령 9경 중 제1경 대천해수욕장(大川海水浴場)
◾️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조개껍질)백사장 사계절 축제의 현장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3.5km, 폭 100m에 달하는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남쪽에 기암괴석이 잘 발달되어 비경을 연출하며, 수온 역시 적당하여 기분 좋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모래질은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조가비를 빻은 가루)으로 조개껍질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잘게 부서져 모래로 변모한 것이다.
해수욕장 요건으로 배놓을 수 없는 경사도는 어떠한가? 대천해수욕장은 완만하고 바다 밀이 일정하며, 백사장은 이물질이 섞여 있지 않은 청결함을 지니고 있다. 얕은 수심과 함께 파도가 거칠지 않아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족 동반의 해수욕을 즐기기엔 천혜의 장소임이 분명하다. 백사장 너머에는 해송숲이 울창하고 아늑하여 해송숲 그늘에 앉아 바다의 정취를 깊이 즐기며 야영장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곳이다.
1930년대 외국인 휴양지로서 자리 잡아 개발의 역사가 깊은 만큼 휴양객들의 편의 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고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는 물론 숙박시설 역시 손색이 없다. 또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개발계획으로 현대적 편의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 여행객이 편안하고 즐거운 체험여행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대형인 만큼 구역도 시민탑광장, 머드광장, 분수광장 이렇게 3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한여름에는 광장마다 다양한 행사로 관광객에게 또 다른 즐길 거리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 시행 이후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개발계획으로 서해안 유일의 콘도미니엄, 유원시설 등 현대적인 편의 시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또한, 대천해수욕장은 단순한 휴식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삶의 체험으로서의 여가 문화로 추구하고 있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해변가요제 등 20여 종의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해변조각공원, 아티스트, 아코드, 아베로에스 길목을 조성, 여행객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어 국내여행객들은 물론 해외여행객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대천해수욕장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개발에도 박차를 가하여,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보령 산(産) 천연머드를 이용한 머드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그리고 전에는 여름철에만 집중하던 관광객이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여 주말 여행지로 변모하여 가고 있다.
대천해수욕장 관광단지에 가보면 활어부터 시작해서 주꾸미 철에는 주꾸미ㆍ광어, 도미철에는 광어ㆍ도미, 그밖에 꽃게ㆍ대하를 비롯 우럭ㆍ키조개ㆍ맛조개ㆍ모시조개ㆍ바지락 등 갖가지 수산물을 맛볼수 있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보령의 명물 키조개삼합구이와 보령 생 미산막걸리를 한잔하는 것이다. 키조개삼합구이가 유명한 이유는 화려한 음식 재료 조합이다. 대천 앞바다에서 잡은 키조개와 우삼겹, 채소를 섞은 맛이 바다와 육지 맛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있다. 끝으로 대천해수욕장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좋은 추억들을 만드시길 바란다.
◾️ 보령 머드축제
머드광장은 매년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까지 보령머드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머드 체험 프로그램과 사진전시, 머드락페스타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세기의 미녀 클레오파트라가 나일강의 진흙을 미용재로 썼다는 것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하다. 피부․체내 노폐물 제거, 수분균형 및 진정효과, 혈액순환․신진대사 촉진 등에 좋은 성분이 다량 함유된 천연의 점토성 물질이 진흙을 함유한 것을 두고 ‘머드’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머드는 화장품의 주요원료로 사용되었다. 원적외선을 방사하는 머드를 몸에 바르게 되면 몸 속 깊이 원적외선이 도달하여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노화된 세포를 활성화시켜 몸 속 노폐물이나 여분의 지방 배설을 촉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머드의 효능이기도 하다.
머드의 종류로는 이스라엘 사해, 캐나다 콜롬비아 해안의 빙하토, 러시아 바이칼, 캘리포니아 클에어, 뉴질랜드 화산 등 각 나라 머드산지의 지명을 딴 머드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령머드가 대표적이다. 세계적 품질을 자랑하는 머드의 산지 보령은 136km에 이르는 보령의 해안 갯벌에 있는 진흙을 채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가공과정을 거쳐 머드를 생산한다.
세계 최고의 천연미용 축제로 자타가 공인하는 ‘보령머드축제’에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보령의 해안을 달굴 때, 보령 갯벌 산 머드를 온통 뒤집어쓰고 축제를 즐기고 나면 보들보들 반짝이는 피부의 나와 마주할 수 있다. 충남 해안의 명소로 이름난 사철 관광지로 여름철에는 더할 나위 없는 피서지 대천해수욕장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보령머드축제’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이름이 높다. 낮이나 밤이나 끊이지 않는 즐거움 보령머드축제 대천해수욕장은 세계 속의 축제로 명성 높은 ‘보령머드축제’가 열리는 현장이기도 하다.
◆ 참고문헌
1. 유석재, [조선시대 피서법], 조선멤버스, 2021.
2. 황민선, [성산계류탁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
3. 김동일, [보령시 문화관광 ], 보령시 홈페이지, 2023.
4. 장수경, [“더위야, 물러가라” 푹푹 찌는 여름 이 기는 선조들의 지혜], 천지일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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