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은정(三隱亭)은 밀양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화악산 자락에 숨겨진 아담한 별서(別墅)이다. ‘삼은(三隱)’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뭐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숨겨진 3가지 보물을 찾으려 부북면 퇴로리에 있는 삼은정을 찾았다.
부북면 위양에서 퇴로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있는 당산나무(소나무)를 끼고 북쪽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가면 이내 산길이 나오고, 좁은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나무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아담한 기와집이 삼은정이다. 아무에게나 보여주기 싫은 듯 한적한 숲속에 감춰진 삼은정의 주인공은 여주이씨 용재 이명구(李命九)이다. 1890년(고종 27)에 맏형 항재 이익구(李翊九)는 두 동생인 능구(能九), 명구(命九)와 함께 단장면(무릉)에서 부북면 퇴로로 옮겨와 서쪽에 서고정사(西皐精舍). 둘째 능구는 용현정사(龍峴亭舍), 셋째 명구는 1904년(광무 8)에 화악산 자락의 고즈넉한 곳에 삼은정을 지었다.
이곳의 숨겨진 3가지는 어(漁), 초(樵), 주(酒) 즉, 물고기, 땔감(나무), 술로 용재(庸齋)는 이곳에서 삼은(三隱)과 더불어 세속을 멀리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았다. 그는 겸손하고 근면한 성품으로 늘 자연과 함께 살고자 한 맑은 심성을 지닌 선비로 동소남(董召南)과 도연명(陶淵明)의 삶을 흠모하였다. 1903년 장릉(莊陵, 영월의 단종 능)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지만,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조용히 은거한 인물이다. 자(字)를 ‘학수(鶴叟, 학 늙은이)’라 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학(鶴)의 상징인 흰색은 유학자들이 추구한 삶으로 그는 속세에 때 묻지 않고 학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주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랐지만, 처음부터 출세 따위에는 아예 관심을 두질 않았다.
정자 앞의 반듯한 사각 연못은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들이 추구하는 자연관을 반영한 것으로, 중앙에는 수미산(須彌山)을 상징하는 둥근 동산을 만들어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담고 있다. 특히, 연못 주변에 희귀한 나무들을 배치하여 정원을 조성하였다.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삼나무, 대왕송, 금송, 백송, 화백, 가이즈까 향나무, 무환자나무(염주나무), 조각자나무 등의 외래 나무와 적송, 전나무, 편백, 주목, 배롱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회양목, 비자나무, 팽나무, 명자나무, 동백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우리 고유 수종들을 심어 나무 전시장(展示場)을 연상하게 한다. 미국이 원산지인 대왕송과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와 금송은 그 굵기가 2m가 훨씬 넘는다. 특히, 관목인 회양목은 둘레 55cm, 높이 500cm의 국내서도 몇 손가락에 드는 큰 나무로 이렇게 곧고 크게 자란 회양목은 드물다. 이 회양목에 얽힌 사연(事緣)은 다음과 같다,
삼은정을 짓기 전에 용재(庸齋)는 맏형이 사는 서고정사에 가서 그곳의 조영(造營)을 자세히 유심히 살피고는 형에게 뜰에 있는 나무를 하나 달라고 했다. 이때 형에게 얻은 나무가 회양목으로 그는 삼은정을 다 지은 뒤 마지막으로 뒤편 담 쪽에다 회양목을 심었다. 북한 땅 강원도 회양이 원산지인 회양목은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도 가장 야무진 나무이다. 선비의 공간에 회양목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속이 단단한 이 나무의 특징 때문이다. 선비들은 회양목의 삶을 통해 자기 내면을 다스리면서도 자기 뜻을 드러낼 때 사용할 도장 재료로 활용했다. 그래서 회양목을 일명 ‘도장(圖章) 나무’라고도 한다. 더욱이 회양목은 생원과 진사들이 사용한 호패(號牌) 재료로 쓰이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가 삼은정에 회양목을 가장 나중에 심은 것은 그만큼 귀한 나무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뜻을 가장 잘 품고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양목을 심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나무를 찾았다. 이 나무를 통해 자기 뜻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회양목을 통해 ‘성의(誠意)’를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성의는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성(誠)’은 중용의 핵심 개념이자 성리학자들의 삶의 철학이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리이자 성실히 노력하는 삶은 사람의 도리이다. 회양목의 성질이 곧은 것은 곧 이 나무의 성실한 삶을 반영한다. 그는 봄엔 매실, 살구, 복사꽃을 감상했으며, 여름엔 이곳 뜰 서쪽 샘에서 물을 길어 더위를 식혔다. 지금도 삼은정 마당 서편의 샘에는 맑은 물이 솟고 있다. 가을엔 샘 옆에 있는 감나무의 감을 따서 먹었다. 그리고 겨울엔 주로 회양목을 만났다. 다른 나무들은 해마다 성장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회양목은 자라는 정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회양목을 만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특히, 그는 겨울철에 회양목의 뿌리를 거쳐 내려온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시는 시간을 즐겼다. 그가 심은 회양목은 지금도 용재의 정신처럼 삼은정에서 여전히 씩씩하게 잘살고 있다.
삼은정은 2016년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수리가 되었지만, 서고정사와 달리 많이 퇴락되고 귀한 대왕송 마저 지난해 태풍으로 넘어져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금 비록 건물은 낡고 관리가 소홀하지만, 용재가 사랑한 삼은(三隱) 중 나무와 물고기는 아직 남아 있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세파(世波)에 지친 누구라도 이곳 삼은정 주변의 원림(園林)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심신의 편안함은 물론 잠시나마 세속에서 벗어난 무릉도원 같은 별천지(別天地)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맛볼 수 있으리라.
K-헤리티지 뉴스 논설위원 장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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