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서출지와 정월대보름

-오기일(烏忌日) 과 소지왕의 사금갑(射琴匣)

김용목 시민기자 승인 2024.02.19 21:24 의견 0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농사력에 맞춰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행사들이 있었다. 세시풍속은 24절기와 명절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기에 행해지고 있는데, 가장 큰 세시풍속 중 하나는 정월 초하루(음력 1월 1일), 설날 연시제(年始祭)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윷놀이를 하거나 복조리를 걸어두는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마련된다.

​이날부터 15일이 지난 음력 1월 15일 각 마을에서는 동신제(洞神祭)를 지내고, 새벽에 귀밝이술[耳明酒]을 한 잔씩 마시며, 약밥을 해 먹는다. 또 부럼을 깨어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한다. 지신밟기, 줄다리기, 횃불싸움 등 악(惡)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밤에는 동산에 올라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새해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보름달이 뜬 날. 우리 조상들은 이를 기념하여 '보름' 앞에 큰 대(大)자를 붙여 정월대보름이라 하였다.

경주 정월대보름 달집살이


오기일(烏忌日)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날은 성현(成俔)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경도잡지(京都雜志)』·『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정월 보름이라 기술하였고, 『삼국유사(三國遺事)』 · 『동경잡기(東京雜記)』 ·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는 정월 열엿새라 기술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소지왕 사건이 발생한 날짜를 음력 1월 15일이라고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용재총화』에서는 '신라왕이 정월 15일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하였다'고 하였다.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의 유래는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사금갑조(射琴匣條)에 “제21대 소지왕(炤智王) 10년(488)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하였는데, 그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다가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라.”고 했다. 왕이 명하여 기사(騎士)가 까마귀를 뒤쫓아서 남쪽으로 피촌(避村)에 이르니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그것을 구경하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길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글을 바쳤다. 겉봉에 “이를 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적혀 있었다. 기사가 돌아와 글을 왕에게 올리니 왕이 “열어 보지 않고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이에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입니다.” 하고 아뢰므로 그 편지를 열어 보니 “금갑(琴匣)을 쏘라.”고 적혀 있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곧 궁중에 들어가 금갑을 쏘니 그 안에 내전(內殿)의 분수승(焚修僧)이 궁주(宮主)와 통정하며 간계를 꾸미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을 복주(伏誅)하였다. 이로부터 나라의 풍속에 해마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온갖 일을 삼가고 감히 동작하지 아니하였으며 16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지냈다고 하였다.“

이 설화에 의하면 정월 16일에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먹임으로써 역경에 처한 소지왕의 신세를 갚은 셈이 되고, 오기일의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사적 서출지 설명

만주족은 앞뜰에 벚나무로 소륜간자(素倫杆子)라는 신대[神杆]를 만들어 세우고 그 상부에 수수를 담은 되를 매달아 놓는 풍속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청나라 태조가 싸움에 패하여 몸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서 그를 도와주었으므로 신대의 수수는 까마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넣어 두는 것이라 한다.

고대인은 까마귀를 태양·신의 사자·신의(神意) 전달자·신의 승물(乘物) 등의 상징적 신조(神鳥)로 사유하였기 때문에 ‘사금갑’ 설화가 형성되었고, 여기에 다시 농경사회에서 기풍 의식으로 약밥을 해 먹는 풍속이 덧붙여져 오기일이 형성된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는 까마귀를 위한 찰밥 제의는 없어졌지만 한국 고유의 약밥이 절식으로 전승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사적 서출지와 이요당

이로부터 나라의 풍습에 해마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15일을 오기일(烏忌日)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 이를 행한다. 향언(鄕言)으로 이것을 달도(怛忉)라고 하니 슬퍼하고 조심하며 모든 일을 금하고 꺼려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른다.

경주남산동 달집태우기 준비현장

곳곳에서 정월대보름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올해 정월 대보름이 유난히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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