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아름다운 옛 석탑(石塔)

소태리 오층석탑을 찾아서

장창표 논설위원 승인 2024.02.27 11:43 의견 8

밀양시 청도면에는 두곡리의 청도김씨 시조(始祖)인 고려 시대 평장사(平章事, 정2품)를 지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를 기리는 남계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과 고법리의 고려 말 두문동 72인의 한 분이신 송은(松隱) 박익의 벽화묘(사적), 그리고 소태리 오층석탑 등의 볼거리가 있다.

절 이름마저 잃어버린 채 아름다운 석탑 만이 홀로 옛터를 지키고 있는 소태리(小台里) 오층석탑(보물)을 찾아 나섰다. 밀양시청에서 출발해 신촌오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국도 24호선을 따라 창녕·구기 방향으로 16km쯤 가면 도로변에 소태리 오층석탑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300m쯤 가면 천죽사 안내 표지석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회전한 후 골짜기로 난 길을 따라 700m쯤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앞쪽의 왼편으로 보이는 높다란 탑이 소태리 오층석탑이다.

진입로 안내판

1919년 발굴 당시에 상륜부에서 60㎜×40㎝ 크기의 백지(白紙)에 먹으로 쓴 당탑조성기(堂塔造成記)가 발견되었는데, ‘건통구년삼월구일기(乾統九年三月九日記)’라는 연대가 적혀 있다. 건통 9년은 고려 예종 4년(1109년)이다. 조성기에 의하면, 황룡사 출신의 학선 대사가 예종 2년(1107년)에 이곳 탑과 금당(대웅전), 불좌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또한, 이곳 절은 신라 효공왕 8년(904년) 이전에 창건되었으며, 당시 국찰(國刹)이던 황룡사 출신 스님들이 번갈아 가며 주지를 지낼 정도로 중요한 위치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질 좋은 화강암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정식 명칭은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으로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석탑 오른편으로 천죽사가 있으나 이 석탑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이 석탑은 오랫동안 하층 기단이 묻혀있다가 10여 년 전의 발굴조사를 통해 ‘이중기단’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등에는 ‘단층 기단’이라 잘못 기록하고 있다. 현장 안내판에서도 기단 구성과 제작 연도 등 잘못된 내용이 보인다. 특히, 자료에 따라 탑의 높이를 4.63m, 5.57m 등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발간한 자료(한국의 사지(寺址)-울산·경남편, 2014)에는 5.4m로 적고 있다.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

2000년 12월∼2002년 12월에 걸쳐 해체·복원 공사로 기단부(基壇部)까지 해체하고 밑부분을 발굴하였다. 그 결과 하대갑석(기단부의 하대 위에 덮은 돌)과 하대면석(하대 갑석 옆부분의 넓은 돌), 지대석을 발굴하고 풍화(風化)가 심한 것은 교체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석탑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단은 지대석 위에 4장의 장대석을 놓은 간단한 구조지만 다른 석탑에 비하면 기단이 특이하다.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코끼리 눈 모양)을 2구씩 새겼으며, 윗면 중앙에는 별도의 돌을 얹어 탑신(塔身) 괴임을 3단으로 조성하였는데 그 윗면이 지붕돌처럼 경사져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을 제외하고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은 각 모서리에 두툼한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매우 높다. 이에 비해 2층 이상에서는 몸돌의 높이는 크게 줄었지만, 폭은 조금씩 줄었다. 각 층의 옥개석(지붕돌) 처마는 네 귀퉁이가 약간씩 들려있고(고려 석탑 특징), 귀퉁이에는 풍경(風磬)을 단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둘레에는 연꽃무늬가 돋을새김(무늬나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김)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장식을 받치는 노반(露盤-탑의 꼭대기 지붕돌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과 철로 만든 기둥의 한끝만이 남아 있다.

풍경을 달았던 구멍

석탑을 바라보는 내내 균형적인 아쉬움은 남았지만 간결하면서도 날씬한 탑신의 풍모가 헌칠한 멋의 신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지붕돌 귀퉁이의 연화(蓮花) 무늬와 기단부의 정교한 장식에 기(氣)가 막힌다. 하나하나 정성껏 쪼아 만든 고려 석공의 기예(技藝)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무슨 소원이 그리도 간절하여 이토록 고운 결로 빚은 듯이 쌓았을까! 솔바람 소리에 어우러진 청아한 풍경 소리는 번뇌의 상념을 티 없이 씻어주련만 긴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사찰의 모습이 정녕 그립다.

K-헤리티지 뉴스 논설위원 장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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