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대 지명유래

양양 10경중 麗觀 이다..

김홍배 승인 2024.03.04 15:43 | 최종 수정 2024.03.13 09:51 의견 2
하조대 정자

양양 10경중 제5경인 하조대해안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과 노송검푸른 동해 그리고 아름다운 등대명승 68호 로 지정된 양양관광의 명소 하조대 정자각에 오르면 현판이 하나 있다

택당 이식(1584-1647) 이 쓴 하조대란 칠언절구에 시가 있는데

臺名河趙 自何年 (대명하조 자하년)

언제부터 하조대라 불리웠는가?

조선의 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잠시 거하며 풍류를 즐긴 까닭에, 이 두분에 성자를 따서 하조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준은 조선의 개국공신(1등공신) 이고 하륜은 조선의 제1차 왕자의난 (무인정사)의 공신인 정사공신이며 2차 왕자의난 공신인 좌명공신이다. 실제로 하륜은 1388년 우왕 14년 요동공격을 반대하다가 양주 (1416년 태종16년 양양으로 사용)로 유배되고 위화도 회군 후 복권되었으며 조준은 권근의 발호에 실망하여 우왕말년 4년을 운둔생활을 하며 우왕폐위와 왕씨 부흥을 꾀하다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 이성계에 의해 대사헌에 발탁된다. 또 하나 바위에 세긴 하조대란 글씨는 숙종때 충청관찰사 양양부사 (1702년 6월 양양부사부임) 와 대사헌을 지낸 이세근 의 글씨다.

우암 송시열 (노론의 영수) 의 제자이자 소론의 영수인 윤증이 이곳에 거하며 시한수를 남기자 윤증의 제자인 이세근이 이곳 바위에 하조대란 글을 각자 하였다.

하조대 (각자)ㅣ

河趙臺(하조대) - 윤 증-

奇峰突兀入波心 (기봉돌올입파심) 파도 속으로 불쑥 솟은 기이한 봉우리여十里松間冒雨尋 (십리송간모우심) 솔 사이 십리길을 비맞으며 찾아 왔네遊子何知河與趙 (유자하지하여조) 나그네는 하륜과 조준을 어찌 알 것인가倚巖空復費莊吟 (의암공복비장음) 바위에 기대 부질없이 시 한수 읊었다오, "역사는 햇빛을 받으면 정사가 되고 달빛을 받으면 야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 하조대에도 전해저오는 야사가있다. (하조대의 총각과 처녀 이야기) 옛날 하조대 근처 하광정리 마을에 하씨성을 가진 준수한 청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살고 있는 바로 이웃에 조씨 가문에 혼기가찬 두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처녀들은 하씨 청년이 준수함에 반하여 둘이 다 같이 한 청년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두 처녀 중 한 처녀가 양보를 하면 별문 제가 없을 것이나 두 처녀는 한사코 양보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세사람은 이 해결책을 협의 하였으나 이 세상의 관습이나 윤리가 세 사람을 함께 결합시킬 수 없게되어 있으므로 청년이 저 세상에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번거로움이 없을지도 모르니 우리 다 같이 저 세상에 가서 셋이서 함께 살자고 합의하여 그들은 함께 하조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 한다. 그 후 이곳을 하조대 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하조대 기암절벽

이곳 하조대 근처에는 해당화가 많고 그 해당화의 빛깔이 동해안의 다른 곳 해당화 보다 훨씬 붉다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 세 젊은이의 애절한 넋이 해당화에 얽혔기 때문이라 한다.

幾人陳迹 逐風煙(기인진척 축풍연) 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을까?

춘삼월 훌쩍 떠나서 한 번쯤은 유숙을 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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