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가 보길도에 머문 까닭은

- 광주문화유산지킴이 고산 윤선도 발자취를 찾아 보길도에 가다 -
-‘어부사시사’가 태어난 세연정-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5.14 06:34 의견 0

‘광주문화유산지킴이‘는 매년 두 차례 문화답사를 떠난다. 전반기는 섬 문화유산을 하반기에는 내륙 문화유산을 찾아간다. 이번 답사는 가깝고도 먼 보길도다. 광주에서 완도 화흥포까지 2시간, 화흥포항에서 노화도 동천항까지 40여분 노화도에서 보길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버스로 이동한다. 먼저 윤선도 원림 세연정으로 향한다.

◆ 우리나라 5대 정원 중 하나인 윤선도 원림 세연정

경주 안압지, 창덕궁 비원 담양 소쇄원 서울 성락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정원 중 하나인 세연정은 유희의 공간으로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고산연보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고 한다.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윤선도는 독서를 하고 후학을 가르치다가 오후가 되면 세연정에서 무희의 춤을 보며 술과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세연정 주변의 자연을 인공미를 섞어 배치를 하고 사방으로 개방이 되는 정자를 세워 사방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심지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온돌을 깔아놓기도 하였다.

◆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은 부용정 원림

부용동 정원은 고산이 직접 조성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거처하는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과 그 맞은편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주변, 그리고 부용동 입구에 있는 놀이의 공간이라 할 세연정 주변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자신의 낙원에서 마음껏 풍류를 누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소박한 생활을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세월을 낚는 어부사시사

.윤선도가 65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세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호한정(江湖閑情)에 빠지는 것이 주제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다. 여음은 배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따라 말을 붙였다. 고려 후기의 <어부가>를 이어받아 다시 창작한 것으로 <어부사시사>는 순우리말로 여음을 새롭게 썼다. 또한 우리말을 쉽고 간소하며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오우가>와 함께 윤선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고산유고>에 실려 전한다

◆ 선계공간 동천석실

동천석실은 선계공간으로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이다. 자연 바위들을 이용해 만든 바위 정원인 동천석실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절벽 위에 한 칸짜리 정자를 세우고 바위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를 받아 작은 연지를 만들었다. 윤선도는 틈날 떄 마다 이곳에 올라가 차를 마시고 시문을 즐겼다, 3,306m²(1,000여 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이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 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믿기지 않지만 낙서재에서 동천석실까지 도르래를 이용했다고 한다

◆ 윤선도 주거공간 낙서재

고산이 머물렀던 집으로 이 집에서 평생 글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겠다는 윤선도의 생각이 낙서재(樂書齋) 이름에 담겨 있다. 1671년 84세의 나이로 그가 생을 마감한 장소이기도 하다. 낙서재는 사당, 전사청, 동와 등 부속 건물뿐만 아니라 낙서재 앞쪽에 화강암을 쪼아 거북 모양의 형상을 만들었다는 귀암과 뒤쪽의 소은병이 일직선 축을 이루고 있으며 낭만 가득한 자연지물이 소박하게 조성되어 있어 한국 원림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또한 낙서재 툇마루에 앉아 동천석실을 바라보는 조망이다. 낙서재의 사당은 고산의 초장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면 쉬었다는 곡수당이 낙서재 아래 나지막한 곳에 위치한다.

문화유산 지킴이가 왔다고 마침 낙서재 흰개미 방재사업을 하고 있었다. 목조문화유산 주변에 방재통을 묻어 흰개미가 서식하는 지 알아본다고 한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바람도 자고 잔잔한 바닷길이 답사길을 기쁘게 열어주어 조선시대로 돌아가 윤선도와 마주하고 세연정에 앉은 듯 동천석실에서 낙서재를 내려다 보는 듯한 뜻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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