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화유산지킴이 만주사에서 지킴이 활동

- 공원부지 수용으로 철거위기에 놓인 만주사
- 미지정 국가유산 우리손으로 지켜야 한다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6.10 06:08 | 최종 수정 2024.06.10 07:59 의견 0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은 낮이 긴 여름달 6월에 광주광역시 북구자원봉사센터 캠프지기와 함께 만주사에서 지킴이 활동을 하였다. 더운 여름날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한마음으로 어쩌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미래유산 주변 정화활동을 하였다.

미지정 국가유산을 지켜야 하는 이유 함께 이야기 나누기

◆ 광주광역시 북구 소해로 11번지에 위치한 만주사는 연제 송병선(淵齊 宋秉璿1836-1905)과 소해 노종용(蘇海 盧種龍. 1856-1940 )을 배향한 사우로 만주사, 원풍정(농암정), 경의재(소해정) 총 세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이한 것은 만주사 건물 정면 가운데 4짝의 문짝 하단에 태극기 문양을 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태극기 문양을 사용하기 불가능한 일로 평소에는 태극기 문양 전면에 얇은 오동나무 판재를 덧대어 쓰고 행사 때는 판재를 떼어 독립 의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독립의지가 깃든 만주사 문짝의 태극기 문양

◆ 1897년 농암은 모정을 초당으로 고쳐 짓고 그 이름을 우국원풍(憂國願豊/나라를 걱정하며 풍년을 기원함)의 원풍정으로 하였다. 또한 이 집은 농암정(聾岩亭)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건립자인 노재규 선생의 아호가 '聾岩(농암)'이기 때문이다. 농암이란 어지러운 이 세상의 온갖 시비를 듣지 않기 위해 고의로 귀가 안 들리는 농아처럼 행세하며 세상을 등지고 잘아간다는 뜻으로 건립자 농암 노재규(聾岩 盧在奎) 선생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만주사 전경 항공사진<사진 김낙현>

◆ 경의재는 소해 노종용(蘇海 盧種龍, 1856~1940)이 1930년 애초에 소해정(蘇海 亭)이란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1965년 노종용의 아들인 노진영이 소해정을 같은 공간에 있는 만주사(晩州柌)의 강당으로 헌납하면서 경의재(선친의 절의를 숭모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강학을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면수재(勉修齋)라고도 부르고 있다.

강학공간 경의재 앞에서 기념촬영<사진 김낙현>

◆ 미지정 국가유산인 만주사는 지정국가유산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원부지로 수용되어 철거위기에 처해 있다. 철거되면 국가유산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기 전에 지켜야 하는 것이 국가유산지킴이로서 의무다. 하지만 미지정 국가유산의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여 미지정 국가유산은 지정국가유산에 비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상대적으로 약해 공원조성의 필요성이 미지정 국가유산 보호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

만주사 주변 정화활동 모습<사진 김낙현>

◆ 만주사 관계자는 광주시가 공원조성하면서 만주사를 훼손하지 않고 유지하여 광주시민을 위해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였다.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도 그 바람이 간절히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관리가 소홀한 미지정 국가유산을 찾아 주변정화활동, 모니터링 활동을 실시하면서 시민들이 함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미래유산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며 미지정 국가유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홍보방안을 마련해야겠다고 하였다.

지킴이 활동 후 만주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사진 박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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