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달성(大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9년 7월 등재된
전국 9개 서원중 광역시 소재로 유일한곳, 주향인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설립자로 대니산(戴尼山)아래 낙동강을 굽어 보는 경사지에 서원을 입지함

방일섭 시민기자 승인 2024.06.24 08:43 | 최종 수정 2024.06.24 13:42 의견 7
도동서원 강당 중정당의 내부현판

도동서원의 배치 구상도
<서원건축, 대원사, 1998년 첫판 p33인용>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한훤당 김굉필(1454~1504년, 1504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 원년인 1568년에 처음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불리워지다 창건 5년 뒤인 1573년(선조6년)에 사액(賜額) 되었다. 하지만 약 30년 후에 임진왜란 발발후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

도동서원 강당앞 환주문(喚主門)
(主人을 부른다는 뜻으로 마음을 수양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향하여 主人은 깨어 있는가하고 물어본다는 뜻으로 主人이란 마음을 말한다)

초창지(初創地)에서 서원이 소실된 후 지금의 자리에 1604년(선조 37년)에 사당을 짓고, 1607년에 사액서원으로 결정되었다. 실질적인 사액 현판의 하사와 치제(致祭; 제사)는 1610년(광해군 2) 4얼에 설행(設行)되었으며 이때 한훤당 김굉필의 위패도 항께 봉안하였다. 1871년(고종8) 서원 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중 하나이다.

도동서원의 설립자는 김굉필의 외증손이며 영남학파의 걸출한 예학자인 한강 정구(寒江 鄭逑, 1543~1620년)였다. 모셔진 인물이나 지은 인물 모두 예와 질서를 중요한 규범으로 생각한 이들이다. 따라서, 도동서원의 건축에는 질서와 규범의 정신이 건물의 건축적 특성이 건축학자 김봉렬은 통일성과 위계성 그리고 대칭성에서 있다고 본다.

中正堂 강당의 단면 투상도
(도동서원 실측조사보고서에서)

강당인 중정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반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익공식 공포장식과 좌우 끝칸은 온돌을 꾸미고, 앞면과 뒷편 일부에 툇마루를 두고있다.

도동서원의 중정당 평면도
(국가유산청 도동서원 실측조사보고서)

1970년대 중건한 수월루는 팔작지붕, 강당입구의 환주문은 사모지붕으로 나머지 지붕들은 모두 맞배지붕으로 목조 건물의 가장 단순한 구조로 가장 엄숙하고 견고한 형태이다.

입구 누각 수월루
1973년에 중건

수월루는 창건당시에는 없는 건물이었지만 1855년에 건립되었다. 이후 1888년(고종 25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1973년에 중건되었다.

도동서원의 사당 단청과 널문

사당은 앞면 3칸에는 각 2짝씩 널문을 달았다.

강당 중정당 기단면석 석축용두

도동서원의 강당 기단 면석에 있는 양머리 형상이라고 하는 용두는 한마리만 여의주를 물고 있고, 나머지 3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형상 인데 이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위한 풍수지리의 비보책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공부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는 마음을 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용두는 도난을 한개를 제외하고 3개가 도난당해 찾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 박물관에 있다.

도난되어 다시 찾은 기단면석의 다람쥐석
다람쥐의 모양이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방향표시 (東入西出)

또한, 강당앞 기단을 오르는 2개의 계단옆에는 다람쥐석이 있다. 이 면석은 2005년 2월 17일 도난을 당해 경찰에 신고되었는데 범인들이 달성군 옥포면 강경리 옥포교회 담벼락에 버리고 간 것을 회수하여 제자리에 설치하였다.

사당에 오르는 돌계단
돌단 난간석에 태극문양과 卍자 문양

사당을 오르는 계단 시작 난간석에는 좌우측에는 태극문양과 卍자 문양이 있고 제일 위쪽 계단 디딤돌 바닥면에는 꽃모양으로 조각을 해둔것이 특징이다. 이런 불교 문양은 당시 서원건립이 유교를 지향하는 조선시대의 이념으로 불교 사찰의 후퇴로 인한 석물등 재활용 의미가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동서원 다람재에서 바라본 모습

도동서원은 낙동강의 홍수로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곳은 수해로 범람하는 지역에 있다. 특히 중정당의 원형기둥 상부에 흰 종이로 감싸안은 모습은 서원중에는 특이한 모습으로 일반인들이 궁금해 한다 . 이는 <상지>라고 하는데 서원 사당에 모신 한훤당 김굉필에 대한 존승의 예를 표하는 휘장격이며. 밤에는 낙동강을 지나가는 나루배가 서원의 밝은 불빛이 반사되어 등대처럼 바라보는 표시의 의미가 있다고도 전해온다.

강당 외부 도동서원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한것이라 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전국의 9개 서원은 1. 영주의 소수서원, 2.함양의 남계서원, 3.경주의 옥산서원, 4. 안동의 도산서원, 5.장성의 필암서원, 9.달성의도동서원, 7.안동의 병산서원, 8.정읍의. 무성서원, 9.논산의 돈암서원이 있다.
도동서원의 주향자인 김굉필은 1454년(단종2년)에 서울 정동(貞洞)에서 태어나 1504년(연산군 10년; ) 51살때 전남순천(全南順天) 적지(謫地; 귀양지)에서 참살 당했다.

1498년(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류되어 평안도 희천(熙川)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뒤 전라도 순천(順天)으로 유배지가 옮겨지고 이곳에서 1504년에 사약을 받게되는데 그의 나이 51세였다. 그의 부인 순천 박씨는 "책을 봐서 사형에 처해졌다"고 책을 전부 불태우고 자식들과 창녕에 내려갔다.

강당 중정당의 넓은 대청 모습

한훤당의 <소학>에 입각한 처신(處身), 복상(服喪),솔가(率家) 자세는 당시 사대부의 귀감이 되었으며, '한훤당의 가범(家範)'으로 숭상(崇像)되었다. 후학으론 조광조(趙光祖)가 있다.

도동서원은 중정당 강당과 담장. 사당이 먼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사당에 있는 담장에는 네모난 모양의 감(坎)이 있는데 이중으로 쌓은 담장의 굴뚝같은 구멍 속에 제문을 넣고 불태우는 일종의 망료위(望燎位; 불태우는 곳)다.

도동서원에는 토담장에 암키와와 숫키와가 둥근 해와 달처럼 중간에 싸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위계가 제일높은 사당에는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다. 이나무의 이름은 목백일홍이라고 하며, 자미(紫薇)나무라고 불리는 백일홍은 껍질이 맨들거려서 마치 살이 없는 백골과도 같이 보인다.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였던 조선선비들이 좋아 하였던 성리학의 상징나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도동서원에는 홍살문은 없지만 타 서원에 없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시설물을 보물찾듯 찾아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동서원과 관계되는 유적이 또 하나 있는데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노정(二老亭) 이다.

도동서원을 지나 낙동강 하류에 다시 굽이치는 강가에 있는 달성군 구지에 있는 이노정의 위치

구지면 내리 2구에 도동서원을 지나온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강건너 고령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절겨에 위치하고 있는데 정여창, 김굉필 두 선생이 1504년 갑자사화시 낙향하여 이곳에서 상봉하여 시를 읊고 유희하다가 간곳으로 상호간에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다 후손들에의해 1885년 건립되고 1915년에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편에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E-mail : izpang@naver.com, 유튜브명: 일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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