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의 이노정(二老亭)을 아시나요?

二老亭은 두노인 김굉필, 정여창 대유학자를 지칭
1991년 5월14일 경북 문화유산자료 첫 지정, 대구과역시 문화유산자료임
道東書院에서 약 7.5km 하류 구지(求智)에 위치

방일섭 시민기자 승인 2024.07.01 08:53 의견 5

조선시대 초기 대학자인 일두(一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와.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이 서로 교류하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곳이다.

대구 달성 구지의 이노정(二老亭)전경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지정 사진자료에서)

두 노인이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년, 연산군4)에 화를 당해 내려와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제일강정(第一江亭)이라고도한다.

일두 정여창 한훤당 김굉필 지칭 二老亭
(국가유산청 사진자료 인용)

이노정은 1885년(고종 25년)에 영남 유림에서 두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고쳐지었, 1904년(고종41년)에도 고쳐지었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 옆면 2칸이며 팔작지붕에 처마 아래 제일강정과 이노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앞면 둥근 기둥에는 유악양(遊岳陽)이라는 시가 현판에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이노정은 우물마루 정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평면 형식을 갖추고 있다. 또한 마루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통풍구를 두어 산바랑 강바람의 자연스런 순환의 기능 활용한 예를 옛건축물에서 보여 주고 있다.

이노정의 사각 담장과 전경
(국가유산청 사진자료 인용)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일두가 함양의 안의현감(종5품, 44세)으로 부임한 1495년(성종 25년)때부터 무오사화때인 1498년(연산군 4년) 사이일것으로 짐작된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이노정 모습
(초기 창건시기는 1495년 ~ 1498년 추정)
(국가유산청 사진자료 인용)

이노정의 두 노인중 함양 남계서원의 배향인물인 일두 정여창(1450~1504)은 무오사화(1498년)때에 9년 시한 함경도 종성에 귀양을 가 관청 화부 노역형으로 살다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병으로 서거 하였고, 도동서원의 주배향 인물인 한훤당 김굉필(1454, 단종2~1504, 연산군 10))은 무오사화(1498년)때에 역시 일두와 같이 장형(杖刑)을 받고.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뒤(1500년, 연산군 6)에 순천으로 옮겨졌다가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무오당인(戊午黨人 ; 무오사화때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의 제자란 뜻)이라는 죄목으로 음력 10월7일 철물시(鐵物市) 에서 효수(梟首: 목을 베어 매달아 군중앞에 공시함으로써 대중을 경계시키던 일)하라는 명을 받고 유배지에서 사형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다.

이 두 역사적 인물들이 다시 복권되어 후대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되어 추앙받는것은 역사에서 지켜본 사례이다.

E-mail: izpang@naver.com/유튜브: 일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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