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화유산지킴이는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에서 광주시민과 함께 여행과 봉사를 더한 ‘볼런투어’ 진행과 더불어 2009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남사당놀이 버나체험을 실시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 집결한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과 광주시민 봉사자들은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여행을 시작하였다. 광주문화유산지킴이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에게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 이야기, 그들의 나눔과 희생정신이 깃든 양림동 일대가 서양촌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를 하면서 양림동산 선교사 묘역까지 걸으며 근대문화유산 주변정화활동을 실시하였다. 마침 선교사묘역 벌초봉사를 하고 계시는 최용남 목사님을 만나 양림동 선교문화 및 선교사 묘역 조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또한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시작된 전쟁고아들의 집 충현원을 찾아 충현원 설립자 박순이 선생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유혜량 목사에게 듣는 시간도 갖었다. 시민들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양림동을 새롭게 알았다고 하였다.
◆ 공모사업 주제인 생태전환교육 프로그램 활용 문화유산지킴이 활동 일환으로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이 자리 잡는 시기에 유행했던 남사당패 놀이 6 종목 중 하나인 버나를 재활용 박스로 만들어보고 버나(대접 돌리기) 체험을 통해 우리의 전통놀이도 알고 생태전환교육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함께 참여한 초등학생은 버나를 만들고 버나 돌리기 체험을 하면서 접시 돌리기처럼 재미있다고 하였다.
◆남사당(男寺黨)놀이는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에 이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연예인 남사당패가 농·어촌을 돌며, 서민층을 대상으로 조선 후기부터 연행했던 놀이다. 남사당놀이의 연원이나 형성과정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해동역사》에 따르면 유랑 민중놀이패는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조선 후기에 자연발생한 민중놀이로 처음에는 사당패라고 하여 여자들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집단에서 출발하였으나, 조선 말기 남자들만의 사당패가 생겨나 남사당패라고 하였다. 구성은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등짐꾼 등 40∼50명으로 이루어졌다. 모자란 인원은 가난한 농가의 아이나 고아, 가출아 등으로 충당하였다. 현재 경기도 안성에서 남사당패 공연을 볼 수 있으며 1920년대 이후 독립적인 존속이 어려워지게 되자 중매구와 걸립패와의 교습을 거치게 되고, 사당패 솟대쟁이패와의 교류도 갖게 되면서 오늘의 형태로 변모된 것이다.
◆ 남사당이란 남자 사당(한량으로 예능자를 말함)들로 조직된 유랑예인집단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조선 사회에 있어서 가장 천대받아왔던 부류이며, 광대(廣大) 장인(匠人) 상인보다도 못한 집단이었다. 따라서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왔으며 전국을 유랑하였다. 또한 남사당은 모든 사회악의 온상처럼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쉴 사이 없이 황색 기를 앞세우고 민중 속을 행군해 갔다. 이들의 놀이는 상민의 편에서 양반 세계에 대한 비판을 희화화(戱畵化) 한 여섯 마당놀이이며, 여섯 마당은 풍물,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조선줄타기), 덧뵈기(가면극), 꼭두각시놀음이다.
◆ 풍물
마을 단위의 농악대와는 달리 일 년 열두 달을 계속하며, 이를 직업으로 하는 농악놀이이다. 풍물은 남사당놀이의 대표 격으로, 숙련된 남사당들의 체기(體技)를 겸한 춤사위와 가락은 전라도나 경상도의 가락인 아랫다리 가락에 비해 윗다리가락의 대표적인 가락으로 힘차고 절도가 있다. 특히 무동(舞童) 춤은 5무동 이상이 아슬아슬한 묘기를 하며, 상무의 극치인 열두 발 상모를 끝으로 한다. 일종의 농악인 인사굿으로 시작하여 돌림벅구 선소리판 당산벌림 양상치기 등 24판 내외의 판굿을 돈다음 상쇠놀이 따벅구(벅구놀이) 징놀이 북놀이 새미 받기 채상놀이 등의 순서로 농악을 친다. 이 풍물은 웃다리 가락(충청·경기·이북지방)을 바탕으로 하며 꽹과리 북 징 장구 날라리 땡각(令角)의 잽이(악사)와 법고 등을 포함한 최소 24명 정도가 일조를 이루는데 짜임새 있는 진풀이와 동니 채상 등의 몸재주와 묘기를 가미하여 연희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버나(사발 돌리기)
담뱃대나 나무 끝 또는 칼끝으로 사발이나 쳇바퀴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묘기를 부리는 기예(技藝)로서 역시 풍물반주로 진행된다. 이 놀이의 묘미는 접시 등을 돌리는 외에 돌리는 사람인 버나 잽이와 받는 소리꾼인 매호씨(어릿광대)가 주고받는 재담과 소리가 극성(劇性)이 짙은 데 있다.
◆ 살판(땅재주)
물구나무서기 등 일종의 기계체조이나 그보다도 강렬한 풍물반주에 맞추어 온갖 체기를 다하는 기예이며, 몸짓의 확대된 표현 속에서 죽느냐(죽을 판) 사느냐(살판) 하는 절실함이 있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종류는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등 11가지 순서를 가지고 있는데, 본래는 대광대패나 솟대쟁이패의 놀이 가운데 하나였는데 남사당놀이로 수용한 것이다. 살판쇠(땅재주꾼)와 매호씨가 잽이의 장단에 맞추어 재담을 주고받으며 재주를 부린다.
◆ 어름(조선줄타기)
외줄로 꼰 줄 위에서 어릿광대와 말을 주고받으며, 풍물장단에 맞추어 온갖 춤을 다 추고, 갖은 걸음걸이로 어름 위에서처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데, 풍자 연희의 멋이 다른 서구적 줄타기 또는 서커스 줄타기와는 다른 점이다. 줄 타는 사람을 어름사니 그 아래서 대사를 주고받는 사람을 어릿광대라고 한다. 줄타기 곡예로 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종류는 앞으로 가기 장단줄·거미줄 늘이기 등 15종의 순서가 있다.
◆ 덧뵈기(가면극)
덧보인다, 덧보이게 한다라는 연극 본연의 의미를 지닌 우리 연극의 원명으로 분장 대신 탈을 쓰는 가면극을 말한다. 춤보다는 재담과 연기가 우세한 풍자극으로 마당씻이 옴 탈잡이 샌님잡이 먹중잡이 등 네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때그때 지역민의 취향과 흥취에 영합하였다. 이는 지역 단위의 가면극과는 달리 대사를 위주로 하는 막간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덜미(꼭두각시놀음)
덜미는 인형극을 말하는 것으로 인형의 덜미를 잡고 한다는 데서 연유되었다. 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로 한국에 하나밖에 전하지 않는 전통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이다. 대개 두마당 일곱 거리로서 즉 박첨지마당(박첨지유람거리 피조리거리 꼭두각시거리 이 시 미거리), 평안감사마당(매사냥거리 상여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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