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 고대 역사 3서 완역한 연민수 前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실장

-3개년(2022~24) 연속 대한민국 우수학술도서 선정
-일본 육국사 중 3서 완역

고현정 시민기자 승인 2024.10.04 03:07 의견 0

공자는 나이 일흔을 두고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즉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노년의 자유는 젊은이의 자유와는 질적으로 달라서 ‘방종’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사회나 개인에게 모두 편안함과 이로움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은퇴 이후의 자유 속에서 현직에 있을 때만큼이나 정력적인 연구를 펼치고 있는 연구자가 있다. 바로, 일본 고대사 전공자 연민수 박사다. 그는 바른역사기획단을 거쳐 동북아역사재단 설립부터 참여한 원년 멤버다.
2017년도 퇴임 후에도 집필 활동을 계속하여 출판한 책이 무려 5종. 그 중에서 3종은 2022~2024 3개년 연속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될 만큼 학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서 연 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선,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일본고대국가와 도래계 씨족>, <역주 속일본기>(상·중·하)에 이어 <역주 일본후기>(상·하)가 올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퇴임하신 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여전히 왕성한 연구 활동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본인의 연구 인생을 되돌아보신다면, 재단에 있던 시절과 퇴임 이후의 연구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요?

재직중에는 재단의 업무에 맞춰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정된 틀 속에서 연구해야 하지만, 퇴임후에는 자유인이 되었으니까 관심분야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퇴임 전의 관심은 그때그때의 촉발되는 분야, 의무화된 주제였고, 특히 한일관계의 쟁점이 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지요. 이제 구속에서 벗어나니까 생각도 유연해졌다고 할까. 일본고대사 그 자체의 문제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요. 특히 퇴직 후에 찾아온 3년이 넘는 코로나 기간에는 대인 접촉이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이 조그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상황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상황이 오히려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전화위복이라 생각이 되네요. <일본서기>에서 시작하여 <속일본기>, <일본후기>까지 번역한 것은 시대로 따지자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건국 신화부터 시작하여 거의 9세기까지를 다루는 어마어마한 시간인데요. 이 3서의 간략한 특징과 번역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본고대 국가사를 다룬 사서는 <일본서기>를 비롯한 6개의 정사(正史)가 있습니다. 이른바 ‘육국사(六國史)’라고 불리우는 이 사서들은 시간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고 일본 고대사의 기본틀을 이루고 있지요. 특히 <일본서기>는 일본 고대국가가 완성되는 시기, 이른바 천황제 율령국가의 성립기에 편찬되어 일본의 건국신화를 비롯해서 역대 천황들의 기록, 국가의 사적, 외교기록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고, 특히 천황통치의 유래, 천황가의 신성성, 통치의 정당성,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제국을 번국 내지 조공국으로 보는 관점에서 편찬되어 당대 일본 지배층의 의식을 엿볼 수 있지요. 이 책은 재단에 있을 당시 역주한 것인데, 바로 일본 고대국가의 역사상, 왜곡된 한일관계사상을 바로잡을 생각에서 시작하였고, 연구자들이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요. 한국 관계 기사가 적지않아 사료가 부족한 한국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속일본기>와 <일본후기>는 <일본서기>에 이은 실록 양식의 사서이며, 동시대에 편찬된 당대의 현대사이지요. 사료에는 실존 인물도 많고 계보적으로 바로 앞 시대의 조상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니까 생생한 기억과 자료에 의해 구성된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두 사서는 일본고대의 천황제 국가의 실태를 이해하는 필독서이기 때문에 천황제 문제를 본질, 천황의 통치이념, 그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지요. 사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없이는 이 시대를 제대로 연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역주본을 내게 되었습니다.

22~24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연민수 박사의 책 3종

번역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역주’ 작업이기 때문에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셨을 텐데요. <일본서기>와는 달리 <속일본기>나 <일본후기>는 다른 동료 없이 혼자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를 추동하게 한 어떤 내외부적 요인이 있었을까요?

역주 작업은 홀로하기에는 방대하고 까다로운 사료가 많아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지요. <일본서기>의 경우에는 관련 연구자 7인이 분담하여 정기적으로 만나 발표와 토론을 계속하며 꽤 긴 시간을 들여 작업했었습니다. 시간적으로 효율성도 있었고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어 장점이 많았지요. 다만 개개인의 번역, 주석에는 연구자마다 차이도 있어 충돌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공동작업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도 있고 주도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퇴직하게 되니까 모든 상황이 변하게 되었지요. 이전에도 <속일본기>는 손때가 묻을 정도로 읽었지만, 번역은 또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일본서기>를 역주했던 경험으로 <속일본기>도 역주하게 되었지요. 나홀로 작업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역주자의 관점이 일관되게 통일성을 갖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분담하여 역주하던 때와는 달리 그 세계의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단독 작업의 매력이랄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일본후기>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중간 사료의 해독에 애를 먹었지만, 관련 사료를 뒤적이며 해결해 나갔지요. 아침에 눈뜨면 시작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했는데, 때로는 꿈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새벽에 일어나 작업한 적도 있었지요. 사료를 읽는 것과 직접 번역하는 느낌이 다릅니다. 사료에 담겨진 내면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고, 사료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지요. 이제 일본 고대사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시야에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일본 고대사 3서를 번역하시면서 혹시 이 3서를 꿰뚫는 어떤 일본만의 특징이랄까, 정신이랄까, 공통점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고대 정사를 하나의 시각으로 말한다면 ‘천황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일본서기> 이후 5개의 사서 모두 이러한 이념을 통일적으로 갖고 있고 천황의 존재를 무시한 기타의 이념은 결국 배제되고 있어요. 이것은 사서의 형식주의이기도 하지만, 일본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은 천황주의를 도외시하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천황의 권력은 율령에 규정된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데, 천황의 승인없이는 명령이 전달되지 않아요. 모든 공문서는 천황의 내인(內印)이라는 날인이 필요하고, 이 인장이 없으면 공문서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지요. 물론 천황권력의 이면에는 귀족세력이 있고 이들 지지세력들의 도움도 필요했지만, 법적으로는 모든 권한은 천황으로부터 나오지요. 즉 천황가만이 일본국을 통치할 수 있다는 이념이지요. 다른 가문이 천황을 능가하는 권력을 장악했더라도 그 권력의 원천은 천황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일본역사에서 역성혁명이 없었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주지요. 적어도 율령제가 충실히 시행된 9세기 전반까지는 천황주의를 이념으로 한 통치체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일본서기> 같은 경우는 허황된 이야기가 많아서 신뢰할 수 없다거나 그 자체로 위서라며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일본서기>는 일본국토의 탄생, 신들의 세계, 일본국의 건국신화를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단절없는 천황가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지요. 허구와 사실의 세계가 혼합되어 있고, 적어도 5세기 이전의 천황의 기록은 후대에 만들어진 내용이 많습니다.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 시기의 역사는 구두 전승이고, 기억의 전승으로 그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생기고 허황된 내용도 부가되지요. 또 각 씨족의 기록도 조상을 미화하는 전승, 천황가와 결부시킨 내용이 많지만, 대부분 윤색되어 있습니다. 외교 관계 기록 역시 한반도 나라들을 일본의 조공국, 복속국으로 보는 사관에 의해 편찬되었기 때문에 사료비판이 필요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는 연구자의 능력이지요. 동시대의 관련사료를 종합해서 비교, 검토하여 사실관계를 도출해 내야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사서이건 그 시대의 지배층의 편찬이념이 들어가 있고, 집단과 왕권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과장과 윤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료는 의심해야 하고 사료비판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역사연구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번역하신 작업은 이 3서 외에도 9세기 일본의 씨족의 상황과 계보를 정리한 <신찬성씨록> 역주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런 작업은 일본 고대사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 나아가 동아시아의 언어, 종교, 사회를 연구하는 수많은 관련 분야의 학자들의 연구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역주 작업을 하시면서 연구자들이 좀 주목해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이 있으실까요?

<신찬성씨록>은 국가에서 편찬한 지배층을 중심으로한 일정 이상의 계층의 사람들의 조상의 계보서입니다. 그 대상은 왕경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의 거주자가 중심이 되고 있지요.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제출한 개인의 계보서, 일본의 족보라고도 할 수 있는 가문의 기록을 제출하면, 이를 조정에서 진위여부를 가리고 선별하여 편찬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계보서에는 조상의 본관, 행적을 미화하는 경향도 있어 사료 이용시에는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요.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서는 한국계 이주집단들, 그 후손들의 계통, 성씨, 행적 등을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실 한국의 고대사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제외하고는 참고할만한 기록이 별로 없잖아요. 특히 한국계 인명은 한국사서보다 더 많이 나오고, 국내에서는 사라져버린 성씨도 적지않아 한국 고대의 성씨연구에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이들 이주민 자료들은 수많은 씨족들의 가계도이고 조상의 흔적이기 때문에 족보사 연구, 당대인의 의식, 나아가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하게 된 배경, 계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어요. 하나의 역사적 흔적은 복합적인 요인, 상황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전근대사 연구 전체에도 해당될 수 있지요. 나아가 고대국가는 수많은 이주세력이 혼합된 복합사회의 구조이고 다양한 혈통이 섞여 하나의 체제 속에 융합되어 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고대사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는 점에서도 이 계보서는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주하신 책 중에 <일본후기>와 <신찬성씨록>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아예 번역이 되지 않았던 것들인데요. 역주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고, 훌륭한 역주 작업이 많이 나오려면 어떤 사회적 인프라가 뒷받침 되어야 할까요?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어요. 몇 번 클릭으로 국내외의 논문과 책을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연구논문의 양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높다고는 할 수 없어요. 창의적인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1차 사료를 직접 보고 읽으면서 분석해야 합니다. 한문 해독은 단기간내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는 번역, 주석서에 의존하지요. 또한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분야 이외의 사료는 정보없이는 쉽게 접하기 어려워요. 이 경우에 주석이 담긴 번역서는 요긴하지요. 일본 고대사료는 한국고대사, 중국사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동 시대에 일어난 사건은 동아시아사 전체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이 가능하지요. 또 고대사료에는 역사학 뿐아니라, 국어학, 미술사, 고고학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주변 연구도 참고해야 하고, 나아가 학제간의 연구, 동 시대의 동아시아 각국사 전공자간의 교류도 중요합니다. 이제 학문의 영역은 점차 그 벽이 허물어져 가고 있잖아요. 앞으로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연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료의 역주 작업은 정확성이 생명입니다. 번역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자간의 학제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특정 분야에서는 연구자간의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러한 연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만큼, 일반적인 한국인들에게는 일본 고대사는 매우 낯설고 별로 주목되지 않는 것이 사실인데요. 한일관계는 정권에 따라서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고 있고, 일제강점으로 인한 마음의 골이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는 깊이 파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한국인들이 일본 고대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식은 학교 교육 뿐아니라 다양한 정보매체를 통해 얻어지고 있는데, 검증되지않은 사실들이 넘쳐나 심각한 폐해가 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우선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고 가르쳤다고 하는 우월적 역사인식이 강하지요. 과거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의식 내지 대응방식처럼 거론되기도 합니다. 물론, 내셔널리즘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존재했고, 때로는 필요합니다. 특히 침략받고 지배받은 역사가 있는 민족에게는 단결의 기반이 민족주의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는 많이 변했고,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는 세계사적으로 반복되는 순환의 역사이며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고정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친일과 지일은 다르고, 청산해야할 문제, 극복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배우고 협력해야 할 부분도 많지요. 소통없는 교류, 감정적인 역사인식만으로 우월한 입지에 설 수는 없는 겁니다.

일본에서 역사청산이 어려운 이유는 천황, 천황제의 존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천황제는 근대에 들어 고대적 천황제의 부활과 함께 침략주의, 식민주의로 변모되었고, 이 모든 것이 천황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지요. 예를들면, 『일본서기』의 대외관계기사의 출발점에 신공황후가 한반도 제국을 정벌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것이 한반도 제국에 대한 복속사관으로 이어지고, 이후 이 전설은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대외팽창의 영광의 역사로 인식되었지요. 이러한 왜곡된 대외인식에는 항상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었어요. 따라서 그 출발점이 되는 왜곡된 고대한일관계 역사상을 올바로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우리의 위상도 예전같이 않은 만큼, 한일관계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과거사에 구속돼야 합니까. 우리 주변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국가가 있고, 올바른 역사로 나아가도록 공동의 인식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역사의 불행은 항상 취약할 때 일어납니다. 일본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과거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우리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연구자들이 속속 연구기관이나 학교에서 퇴임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베이비부머 퇴임자들의 선두에 계셨었는데, 앞으로 퇴임을 앞둔 연구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적어도 20~30년 이상의 퇴직 후의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은 있겠지만,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해오던 것을 중지하면 그 공허함을 메우기가 어려워요.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도 활용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으니 못다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요.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접할 기회도 많고 각자의 관심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자기분야에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간의 연구를 집대성하면 국가 전체로 보면 굉장한 지적 정보의 축적이 될 겁니다. 우리 주변이나 일본 연구자들 중에는 퇴임 후의 활동이 현역 이상으로 활발한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결국 본인이 선택한 삶을 후회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연구자들이 공감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예정된 역주 작업이 있으신지,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일본후기>에 이어 나머지 육국사 전체를 다하면 좋겠지만, 훌륭한 연구자가 많아 누군가가 계속 이어나가리라 기대합니다. 사실은 <속일본후기> 역주작업도 진행 중이었는데, 그간 분석한 사료를 정리할 필요를 느껴 중단한 상태입니다. 요즘 나의 관심은 정창원문서, 일본 율령인데, 정사와 더불어 일본 고대국가 연구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는 사료이지요. 아직도 일본 고대국가의 실상을 그려내는 데에는 한 조각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 고대의 천황제 율령국가의 구조, 그 운용시스템을 한 폭의 그림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하는 구상도 갖고 있지요. 많은 양의 자료를 읽고 이해해야 하고, 어떠한 관점에서 설명해야 하는가도 숙제입니다. 천황의 권위와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는 신비주의적인 요소도 있지만, 관료제를 움직이는 율령제의 시스템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틈틈이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연민수 박사 약력

전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연구실장
동국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큐슈대학(九州大學) 대학원 일본사학과 수사·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논저목록
『일본고대국가와 도래계 씨족』, 학연문화사, 2021
『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 역사공간, 2014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1998
『고대한일교류사』, 혜안, 2003
『일본역사』, 보고사, 1998
『譯註日本後紀』(上·下), 혜안, 2023
『譯註續日本紀』(上·中·下), 혜안, 2022
『新撰姓氏錄』(上·中·下), 공역, 동북아역사재단, 2020
『역주일본서기』(1~3), 공역, 동북아역사재단, 2013
『일본고중세문헌속의 한일관계사료집성』, 공편, 혜안, 2005
기타 공저, 역서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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