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상징 황궁우, 내부를 엿보다

대한제국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환구단은 간데없고 황궁우만 남았네

김지연 시민기자 승인 2024.10.25 10:19 의견 0

서울 시청역 서울광장 너머 소공동에 웨스턴조선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환구단이 있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구단은 대한제국 시절 조성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중국의 천단과 같은 기능을 했던 곳이다.

일제에 의해 철거되기 전의 환구단. 현재는 부속건물은 황궁우(좌측)만 남았다.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 민족은 하늘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조선시대 태종대에 이르러 명나라의 제후국임을 인정하고 세조대에 이르러 천제가 폐지됐다.

1897년 10월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스스로 황제임을 선언하며 환구단을 짓고 천제를 지낸 후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환구단은 황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이 설계했다. 당시 인부 천 여 명이 한 달도 안되어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환구단은 청나라 사신들이 오면 대접하고 묵게 했던 남별궁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1913년 환구단을 허물고 1914년 철도호텔을 지었다가 1963년 조선호텔을 재건축 하면서 대부분 시설들이 철거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황궁우와 삼문, 석고가 남아 있다.

황궁우는 원구단의 짧은 조성 기간에 맞춰 신위판을 임시로 봉안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황궁우는 밖에서 보면 삼중 지붕으로 구성되어 삼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천장까지 통층으로 되어 있다. 2층은 창이 없으나 3층은 광창이 있어 빛이 들어온다.

이런 구조는 어두운 실내에서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을 통해 황궁우가 신성한 공간임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준다. 또한 높은 천장은 하늘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일반에게 개방하지 않는 황궁우 내부


특히 천장의 쌍룡 장식에서 보이는 발톱 여덟 개의 용장식은 경복궁 근정전이나 경희궁 숭정전 등에서 보이는 발톱 일곱 개의 용장식보다 더 격이 높은 형태의 장식이다. 일반적으로 용의 발톱 혹은 발가락의 개수는 세 개부터 다섯 개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그중 일곱 개는 가장 격이 높은 황제를 상징하였고 중국황제들도 7조룡 장식을 썼다. 반면 대한제국은 일곱 개에 이어 여덟 개까지 등장하면서 그 의미를 격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13년만에 멸망했으니 부국강병을 꿈꿨던 군주의 덧없는 희망처럼 읽힌다.


현재 환구단 영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었고 일제는 1914년 환구단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지어 현재 황궁우만이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다. 황궁우는 그동안 웨스턴조선 호텔 정원의 장식품처럼 인식되어 누가 무슨 용도로 지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환구단 정문 역시 한동안 사라졌다가 2007년에 우이동 그린파크호텔 입구에서 발견되어 2009년에 지금의 자리로 복원했다. 이 문은 1914년 일제가 환구단 자리에 세운 조선호텔의 정문 역할을 하다가 1967년 조선호텔을 재건축할 때 해체되어 우이동 그린파크호텔(현 파라스파라 호텔) 정문오로 쓰였다. 2007년 이 문의 내력이 세상에 알려져 2009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위치에 이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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