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고사학회(회장 조윤재)는 지난 11월 29일(금) 고려대학교 문과대 132호 강의실에서 제58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매년 1차례 개최되는 한국상고사학회의 학술회의의 올해 주제는 「'王'과 '國'의 상고사」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왕'과 '국'의 개념에 대해서 문헌사와 고고학에서의 깊이 있는 탐구가 시도되었다.
본격적 논의에 앞서 권오영 서울대 교수가 「동북아시아의 '왕'과 '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하고, 이어 전문가 4명의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발표는 ▲문헌을 통해 본 왕과 국의 기원(박대재, 고려대) ▲일본 고분시대 초기국가론과 왕권론(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고고학으로 본 진변한 지역의 왕묘(정인성, 영남대) ▲한(漢)과 전(滇)의 공존(장쯔롱 蔣志龍, 윈난성고고연구소)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종합토론과 합쳐 몇 가지 쟁점과 주요 내용들을 정리했다.
◇ 고조선 왕계는 조작되었다?
박대재 고려대 교수는 기자동래설과 준왕남래설이 실제 사실이 아니며 후대 낙랑지역의 호족이었던 왕씨나 한씨가 자신의 가계를 꾸미면서 나타났을 가능성을 높게 보는 기존의 입장에서, 『위략』(3세기 중엽 편찬)의 고조선 관련 기록을 재검토했다. 『위략』에서야 비로소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의 준왕에 대해 그 이름과 구체적 행적이 나오는데, 조선후(朝鮮侯)→부왕 부(否)→준왕으로 이어지는 준왕의 계보 역시 낙랑 유민들에 의해서 설정되거나 꾸며졌을 가능성을 거론하였다.
◇삼한 70여 국을 다 같은 '국'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삼국지』에 전하는 마한 50여 국, 진·변한 24국 등 70여 국의 성격에 대한 현재까지의 논의는 모든 '국(國)'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박대재 교수는 『삼국지』에서 대국과 소국의 차이를 인지하고 구분하고 있음에 주목해 인구를 추산하면 마한의 대국과 진·변한의 소국 사이에는 15배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이에 따라 대국은 초기국가의 단계, 소국은 읍락공동체 내지 읍락연합체나 군장사회 단계로 볼 수 있다고 하며, 기존의 '국읍'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하여 여러 국의 중심 읍락이 아닌, 관가와 성곽을 갖춘 대국의 중심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여호규 한국외대 교수는 국마다 발전 단계가 다르다는 것에 크게 동의하는 바이나 국읍은 대국과 소국 모두의 중심지로 이해하는 게 낫지 않는가 하는 의견을 덧붙였다.
◇ '국가'를 증명하는 객관적 지표는 무엇인가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는 국가형성론 및 왕권론에 대한 일본학계의 경험사례를 제공했다. 일본의 국가형성론의 양대 산맥은 쓰데 히로시(都出比呂志)와 와다 세이고(和田晴吾)이다. 쓰데 히로시는 전방후원분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적 신분질서가 고훈시대의 권력관계를 특징짓는다고 하고, 이 정치적 질서를 전방후원분체제라고 불렀다. 또한 7개 지표(계층제, 항상적 잉여, 지역 편성원리, 강제력 등)에 근거하여 그 논리를 뒷받침하여, 전방후원분이 보이는 고훈시대부터 초기국가단계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와다 세이고는 3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고훈시대 내부에서도 구체적인 사회발전 양상이 크게 다르므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반론을 펼쳤다. '국가의 출현'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지난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국가'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지표가 명확하지 않다. 큰 무덤을 그 지표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 크기가 왕권의 강력함보다는 오히려 미약함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미 일본학계의 일반적 이해가 되고 있다.
◇ 초기철기시대의 최상위 무덤의 주인을 '왕'으로 부를 수 있는가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2017년 발굴된 경산 양지리 목관묘를 거론하며 유물의 양과 질을 볼 때 '왕'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는 규모인데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왕릉'이라는 표현에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대체 '왕' '왕릉'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 외에도 초기철기시대에 왕릉 혹은 왕묘로 부를 만한 비산동, 영천 어은동 등의 유물 현황을 소개하였다. 이에 대해 토론을 맡은 이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국립 박물관에서는 삼국시대 이후에야 최상위 무덤에 대해 '왕릉'을 칭하고 있는 상황이 대중 교육의 일선에서는 불가피함을 토로했다.
정인성 교수는 '왕'이나 '왕묘'에 대해 한국고고학계가 매우 보수적인 까닭이 일제강점기 고고학이 영천 어은동과 같은 초기철기시대 유적에 대해 '낙랑군'이나 중국 영향을 강조하면서 삼한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영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표시했다.
발표하는 장쯔롱(蔣志龍) 윈난성고고연구소 연구원
이 외에도 주목되는 발표는 중국 학자 장쯔롱(蔣志龍) 윈난성고고연구소 연구원의 「한(漢)과 전(滇)의 공존」이었다. 그가 소개한 윈난성 하박소(河泊所) 유적은 한 무제에 의해 멸망당한 전국(滇國)과 관련이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전국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전국 시기, 그리고 이후 한나라 때의 유적과 유물이 골고루 출토되었고, 한은 기존 전의 도성에서 동쪽으로 약 1,000m 지점에 새로운 성을 건설했던 것이 드러났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멸망하여 한 군현이 두어졌던 고조선의 사례와 비교 대조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나 아쉽게도 아직 제대로 된 보고서가 없는 형편이다.
특히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전(滇)이 한(漢)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에도 일정 기간 공존했을 가능성이다. 한은 전을 정복한 이후에 익주군을 설치했는데, 「滇王之印」 「滇國相印」 등의 봉니가 나와 별도의 토착민 정치체가 군현지배와 일정 기간 공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장쯔롱 연구원에 따르면 특히 「전국상인(滇國相印)」 봉니로 볼 때 전왕은 한의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두 개의 상이한 문화체 혹은 정치체가 공존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상으로 이번 제58회 상고사학회 학술대회는 당연한 듯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왕'과 '국'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왕'이나 '국가'가 천편일률적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정치체의 서로 다른 발전 단계를 고려하여 고고학과 문헌사학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세밀하면서도 객관적인 지표를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