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팔상전(국보 제55호)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법주사 경내에 있다. 팔상도가 봉안되어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탑이라는 점 외에도 법주사 팔상전은 불사리 봉안처로서의 탑의 성격과 예배 장소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탑전(塔殿)’ 형식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5층 누각형식의 목조탑이다. 탑은 인도에서 복발형(覆鉢形)으로 시작되어 중국에 들어오면서 고루식(高樓式) 목탑으로 변형.발달되었는데, 이러한 형식의 목탑이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법주사 팔상전인 것이다.
법주사 팔상전이 목탑형식의 건물이라는 점에서 흔히 쌍봉사 대웅전과 비교하고 있지만 쌍봉사 대웅전과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쌍봉사 대웅전과 달리 법주사 팔상전은 사방에 계단이 설치된 높은 기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단부만 본다면 법주사 팔상전은 쌍봉사 대웅전보다 오히려 불국사 다보탑과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불국사 다보탑은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보신불인 석가모니불이 불이(不二)임을 상징하는 탑으로, 팔상전에서 보듯이 탑의 기단 사방에 돌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단은 정사각형의 모습을 취하면서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근본도리를 상징하고, 제1층을 향하여 올라가는 동서남북 사방의 계단은 오직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수행의 수행경지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 기단 또한 그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팔상전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각 층의 칸의 수(數)이다.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너비를 말하는 단위로 정확한 치수는 정해져 있지 않다. 1층.2층은 5칸, 3층.4층은 3칸, 5층은 1칸으로 되어 있다. 전체 층수를 5층으로 설정하고, 각 층의 칸수에 5.3.1의 칸수를 적용한 것은 일정한 체감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는 동양 전통의 수리관(數理觀)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는 양수의 중심 수이고, 3은 완전의 수이며, 1은 그 자체가 양을 의미하는 상수(象數)이다. 옛 사람들은 탑의 층수뿐만 아니라 생활의 여러 방면에 이와 같은 양의 상수를 적용시켰다. 상수는 단순히 수를 셈의 대상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대응과 조화의 이치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이치에 인간이 동참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법주사 팔상전은 불탑 형식의 구조로 된 불사리 봉안처로서의 성격과 예배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팔상도를 봉안할 목적으로 건립된 건축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팔상도는 법주사뿐만 아니라 일반 사찰의 팔상전이나 영산전과에서도 팔상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반 사찰의 팔상전에서는 8폭의 팔상도가 불단을 향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열되어 있어 한 곳에서도 내용 전체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법주사 팔상전의 경우는 건물 중심에 조성된 네 벽을 돌아가면서 한 벽면에 두 폭씩 팔상도를 배치해 놓았기 때문에 한 곳에서는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팔상전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탑돌이를 한 셈이 된다. 이 탑돌이는 곧 심초석(心礎石)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한 탑돌이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팔상전 외부 장식 중 우리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2층 처마 밑 네 모서리에 장식된 난쟁이 형상의 인물상과 용의 형상이다. 난쟁이상은 공포를 구성하는 수서(垂舌 : 공포에서 쇠서 끝이 아래로 삐쭉하게 휘어 내린 모양으로 된 것) 위에 있는 두 개의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눈은 왕방울 눈이고, 나선형으로 표현된 눈썹과 수염은 짙은 색깔로 채색되어 있다. 이 난쟁이 형상은 불교 외호신중의 하나로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함과 동시에 불자와 불전을 수호하는 기능을 가진 존재로 알려져 있다.
1968년 9월 팔상전을 해체 할 때 심초석에 마련된 네모꼴의 사리공안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은제 사리호가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경우는 많지만 목탑에서 발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사리장치가 발견됨으로써 법주사 팔상전이 사리 봉안처로의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사리호는 연꽃 모양의 뚜껑을 가진 그릇 표면에 큼직한 연당초(蓮唐草) 무늬를 새기고 여백 부분에 어란(魚卵) 무늬를 채운 소박한 장식의 용기이다.
팔상전은 바닥면이 넓고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체감 비율이 큰 입면형식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목조탑의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였으나 이는 구조적 측면에서 고층탑에서 문제시 되는 수평외력에 대한 장인들의 합리적 대응으로 해석되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의 체감 비율은 시각적 안정감을 주어 친밀한 인간적인 척도를 부여하기 위한 구조적 개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고층목조건물로서의 구조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종교적 상징성과 건축 용도에 부합하는 기능적 측면을 유기적으로 융합시킨 목탑이다. 팔상전은 한국 고건축 중에서 합리적 구조와 종교적인 기능, 친근한 외관미를 합치시켜 이들을 가장 훌륭하게 처리한 대표적인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원영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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