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아여고 3.1만세운동 기념동상 앞에서
3.1운동 106주년 광주시민들이 수피아여고 3.1만세운동 기념 동상 앞에 모였다. 역사이야기가 있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자 국가유산지킴이지도사를 비롯하여 40여 명이 3.1만세운동의 상징인 태극기를 높이 들었다.
◆ 1019년 3월 1일 만세운동에 앞서 동경에서 조선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춘원 이광수가 2.8독립선언문을 썼고, 이 선언문 초안을 송계백 학생이 몰래 숨겨 서울로 와 송진우,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에게 전달되었고, 민족대표들은 서울의 학생들과 함께 거국적인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2.8 선언문 초안을 바탕으로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 3월 1일 정오에 학생들과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민족대표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 민족대표들은 종로 태화관에서 식사를 하면서 일본경찰에 자수하면서 연행되는 비겁한 행동을 합니다. 민족대표 때문에 무산될 뻔 한 만세운동을 이름 모를 학생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만세운동은 폭발하게 되었다.
◆ 광주에서는 3월 10일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바로 이곳 수피아 여학교가 앞장섰다. 수피아 여학교 졸업생이자 교사였던 박애순 열사는 전국적인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에게 신문기사를 읽어주며 독립운동이 필요함을 설명했고 학생들은 그 뜻에 공감하고 크게 호응하였다. 3월 10일 만세운동의 날로 결정되자 밤늦은 시간에 기숙사 지하실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수피아여학교 3.1운동 이야기
◆ 드디어 3월 10일 광주의 작은 장날 수피아 학생들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태극기를 흔들면 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들은 칼을 휘두르면 진압했고 수피아 학생인 윤혈녀(윤형숙)는 왼쪽팔이 잘려나가고 많은 피를 흘렸음에도 오른팔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이 모습에 사람들은 격분하여 만세소리는 더욱 크게 이어졌다.
광주 3.1운동 역사이야기가 시작되다
◆ 수피아 여학교는 신사참배를 따르지 않아 1937년 결국 문을 닫게 되고 1945년 광복을 맞은 이후 재건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학교로 윈스브로우 홀, 메모리얼 홀 수피아홀 등 등록문화유산이 있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윈스브로우 홀, 커티스메노리얼 홀, 수피아 홀
◆ 광주에서 3.1운동은 동경 메이지대학 유학 중이던 광주출신 정광호가 최팔용 등 11인 서명한 조선청년독립단 명의로 발표된 2.8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광주출신 김범수 등과 만나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월 말 서울에서 김필수 목사가 내려와 최흥종과 김복현을 만났고 두 사람은 3월 2일 상경하여 유학생들을 만나 광주 3.1운동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후 책임자가 되었지만 3월 5일 최흥종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깃발을 흔들며 만세시위를 선동하다 체포된 후 김복현은 3월 6일 손병희 등 33인이 서명한 3.1독립선언서 등 문건을 지참하고 광주로 내려온 후 남궁혁의 집에서 광주 3.1운동 만세시위를 모의한다. 이때 참석한 이들은 김복현, 김강, 최병준, 송흥진, 최정두, 한길상, 김용규, 김태열, 강석봉, 손인식 등 양림동 기독교계인사와 신무잡지종람소 회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교사 등이었다.
광주 3.1운동 만세시위를 모의했던 장소
◆ 3월 8일 큰 장날 만세를 부르려던 계획은 독립선언서 등 준비 소홀로 3월 10일 작은 장날로 연기되었고 10일 오후 3시 광주교 밑 모래사장에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들자 언덕으로 올라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과 독립만세를 외쳤다.
◆ 시민들은 양림동 3.1운동 역사길을 걸으며 106년 전을 돌아보는 날이 되었다. 역사길 투어를 마치고 사직골 생활문화센터에 모여 바람개비 태극기 만들기 체험과 더불어 국가유산과 자원봉사활동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었다.
사직골 생활문화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