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문명’의 문 턱인데, 왜 굳이 고대사를 알아야 할까?
윤명철
안녕하십니까?
진짜 봄이 왔군요.
저는 밭에도 가고, 나물도 캐고, 또 나물반찬도 먹고하니까 봄이 돌아온 것을 실감합니다.
몇일 전에는 밭에 갔답니다. 조금 높은데다가 길게 이어진 산과 연결된 야산 기슭에 있거든요. 아내가 앉아서 따사한 햇볕을 조이면서 칼질을 하는데, 후다닥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고개를 산 쪽으로 돌려보니 고라니가 튀어 올라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전에는 멧돼지까지도 보았답니다. 고라니들을 마주치면 구면처럼 반가웠었는데. 근래에는, 아니 작년에는 몇 번 못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너무 반가웠습니다. 갑자기 자연이, 세상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심장에 피가 빨리 도는 것 같더라고요. ‘고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그것도 날쌔게 뛰는 생명체를 확인했기 때문이지요.
또 이야기가 옆 길로 샌 것 같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요즈음은 어려운 세상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선 현대인은 문명사적(패러다임의 변화), 지구사적 (생태계), 세계사적 동아시아적인 변동과 재생의 와중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혼란(disorder)’은 아니지만 ‘혼돈(chaos)’의 판(field)에서 우와좌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방관할 수 만은 없잖습니까? 저는 역사학자이니까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미래 세상을 어느 정도 예측해보는 것이지요. 저는 현재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인류 역사 이래, 특히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ce Sapience)’ 이래로 문명의 최대 격변기, 전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해왔지요.
이때 제가 말하는 ‘문명’은 샤무엘 헌팅톤 등이 말하는 ‘류’의 ‘civilization’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연관을 맺은 우주 자체까지도 관여한 모든 조건의 총체와 연관하여 인류라는 ‘종(speices)’이 직면한 ‘대변동’을 의미합니다. ‘crash’, ‘shift’ ‘re-form’ ‘re-set’ ‘re-frame’ ‘re-foundation’ 등 어느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혼선을 일으키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다들 아시겠지만 ‘AI’ 등의 등장으로 ‘인간’ 또는 ‘인류’의 근본적인 성격이 변모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초문명적, 초인류적인 시대에 사는 우리가 왜 굳이 먼 과거의 일인, 흘러가버린 강물같은 역사를 알아야 할까요? 더구나 고대사까지도 공부해야 할까요? 기이하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지요. 사실은 제가 1993년도에 왜 고대사를 연구해야할까 하는 내용의 논문을 써서 발표했습니다. 역사학을 기능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건의 밝힘이나 나열이 아니라 의미를 찾고, 가치를 지향하는 학문으로 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현재도 의미가 있고, 어쩌면 오히려 이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발표한 논문을 토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존재의 원 근거를 찾기 위하여.’ 라고 말하렵니다. 이 때 ‘존재’란 자연사가 아닌 역사 속에서의 존재이니 당연히 인간이겠지요. 그 인간은 ‘개체’일 수도 있고, 식구나 씨족의 한 구성원일 수도 있고, 나아가 부족, 국가, 민족의 구성원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존재가 원근거, 근원(시원)을 찾으려는 시도에는 반드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부분은 생략하지요. 사실은 준비도 덜됐거든요. 그래서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해·달·별·바위같은 무기체, 물이나 공기·흙같은 유기체, 동물·파충류·조류·식물·곤충, 미생물까지 망라한 생명체들, 그리고 그들과는 같으면서도 또 조금은 다른 의미와 기능(기호의 사용 등)을 가진 ‘생명체’인 인간들은 모두 ‘존재유지’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 종류의 차이가 있지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관계를 맺는 방식과 비율에 따라서 차이가 생기니 말입니다. 어쨌든 독특한 존재인, 기호 등 다양한 능력을 계발한, 어쩌면 진화의 최종단계일 수도 있는 인간은 일반적인 존재유지 본능을 넘어서는 변화와 발전을 지향합니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출발한 근원에서는 멀어지고, 거기다가 다른 존재물과의 간격과 거리까지 확인하면서 불안감은 더더욱 커집니다. 심지어는 불필요할 수도 있고, 인간 외에 어떤 존재도 갖지 않는 ‘태생(胎)’에 대한 불안감, 존재에 대한 의심이 커집니다. 존재양식에 대해서도 끝없이 자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싯다르타처럼 말입니다. 더구나 생각이 많아지고, 문화의 탄생과 발전으로 인한 본능과 생명력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면서 근원적인 불안감은 확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명과 계약한 댓가로서 얻은 불안감이지요.
‘모든 생명체는 ‘회귀 본능’이라는 요소가 있다.’ 이 말을 잘 알고 계시지요.
찬찬히 유추해보세요. 아니 추론을 해보세요.
우리의 삶은 과거의 산물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과거인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요.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가운데에 ’비너스 탄생‘ 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지요. 어려서부터 눈길 가는데 마다 걸렸던 그림입니다. 거기서 넓게 품을 벌린 흰조개는 신령스러운 자궁을 뜻하지요. 유화부인이 해모수를 기다리며 머물렀던, 심지어는 그가 자기를 버리고 떠난 후에도 끝까지 머물렀던 웅심연(곰물, 신물)도 태반이지요. 예전에는 막연하게 추론했던 것들을 지그문트 프로이드나 구스타프 융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우리에게 그 정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준 것들이지요. 저는 그 자궁과 태반이 어쩌면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 생각이 바르다면 역사학은 그러한 역할을 해야하고, ’과거‘나 ’원향‘을 정서나 원론을 넘어 논리적인 설명, 더 나아가 어느 정도는 ’실질‘로 입증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대를 알아야하고, 고대사를 공부해야 하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옛날 옛날에~’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 ‘하늘이 열렸을 때~’ ‘호랑이가 담배피울 적에~’라는 첫 꼭지로 이야기들을 하지만 그것은 ‘진실(truth)’일 수는 있어도 꼭 ‘사실(fact, event)’이 아닌 경우가 태반입니다. 신화나 설화·민속·신앙이나 종교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역사 등 학문에서는 전적으로 수용하기 힘듭니다.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형식과 내용으로도 세상이 움직이는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특히 현대에는 자연과학이라는 이름을 빌어 증거도 찾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따라서 과거에서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역사를, 고대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고대 역사를 알고 공부하려는 이유와 필요성은 ‘인간이 휴식과 편안함을 얻고 힘을 복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려 합니다.
모든 존재물에게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생명체, 그 중에서도 동물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어디겠습니까? 저는 인문학자라서 개인적인 추론과 잊혀진 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건 어머니의 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존재로서 탄생되고 생육된 근원이지요. 따사한 품을 떠나 발가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올 때 부터 인간은 좋건 나쁘건 사물과 관계를 맺고, 생존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쉬지않고 움직여야 합니다. 노동이건, 놀이건, 수행이건 간에 움직여야 하니 고단하고 지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때때로 멈추고 싶어합니다. 꾀병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심지어는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듭니다. 그럴 때 떠오르는 어머니의 품은 깃들고 싶어하고, 안식하고 싶어하는 장소이지요. 인간은 이런 체험이 이미 기억의 비늘들 속에 문신으로 새겨져있습니다. 거기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근원’ ‘첫 출발지’ 즉 ‘과거’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낸 것입니다. 비록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시간(Time)’을 발명했지만, 부산물로서 과거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더욱 깊숙이 깨달은 것이지요.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으므로 ‘동적’이 아닌 ‘정적’인 것이고, 거칠고 전투적인 상황이 아닌 편안하고, 아름다운 상황입니다. 싸울 이유도 없고, 싸우지도 않지만, 아니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다칠 상황이 절대 안생기지요.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피난처입니다. 추억은 안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라도 아름답게 회상되고, 또 향수를 불러 일으키지 않나요? 인간은 이렇게 과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기력을 회복합니다.
또 질문을 해봅니다. 현대의 문명인들은 왜 원시 상태, 또는 문명 이전의 상태를 희구합니까? 때로는 희생을 무릅쓰면서까지 원시와 유사한 상황을 모방하나요? 저도 그러한 행위를 많이 한 편에 속하는데요. 이러한 제 경험때문인지 모르지만 과거를 지향하는 본능 때문도 있다고 여깁니다. ‘모든 생명체는 회귀본능이 있다.’는 말 잘 아시지요? 더구나 인간은 역사를 만들었으니 과거에 대한 관심은 더 강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과거는 인간들에게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불필요한 불안감을 줄여줄 뿐 아니라 원향의 언저리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면서 많은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합니다.
세 번째로, 고대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을 얻기 위해서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과거를 가진 모두의 힘들을 모아 현재와 미래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다(Histography is Futurology)’
제가 1991년도부터 발표한 이론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용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고, 접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합니다. 인간은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해 조차도 불안감을 삭힐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래’는 불안과 혼란을 넘어 때로는 공포감까지도 자아냅니다. 일단 추상적이고, 불투명합니다. 거기다가 급격한 변혁의 시대, 불확실성 속에서는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확신할 수가 없거든요. 화이트 헤드는 ‘생물은 일어날 변화를 부단히 예상하면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진 변화에 적응하는 것처럼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하면서 이 예지야 말로 생물의 본질이다.’ 또 ‘예측과 반응이야 말로 생물과 생명의 본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 알려진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인간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와 능력때문에 생물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것이지요. 인간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킬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미래와 달리 과거는 분명히 존재했고, 현실은 늘 구체적이었습니다. 다 겪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과거를 떠올리며 반성도 하고, 회상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동일한 주체의 행동 경험은 미래에도 유사한 패턴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과거를 인식하면서 비로서 가능해집니다. 설사 다르다 해도 이는 그 것을 주조로 한 변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과거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이 결국은 인간을 진화가 아닌 진보, 현재가 아닌 미래로 이끌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인간은 역사를 발명했고,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학’이 태어났다고 봅니다.
인간이, 역사학자가 과거의 사실을 해석하는 순간 이미 역사학은 미래까지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해석’의 불가피한 다양성 때문에 ‘어떻게(how)’라는 전략과 전술은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저는 역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인간의 해방과 사회의 진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역사활동 주체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완벽한 의미의 역사를 영위하도록 ‘방법론의 제시’라는 기능까지도 하는 것이지요. 이 때 방법론이 지닌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미래예측기능’입니다. 특히 대혼돈을 헤매는 21세기 초의 인류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what)’이나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입니다. 당연히 역사학은 본성상 미래학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제할 것이 있습니다. 역사학에서의 미래 예측이란 예언도 아닐뿐더러 현재와 미래를 해석하는 절대척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책상물림이거나 흑심을 숨긴 이상주의자나 피해의식도 가진 무지한 선동가들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역사학은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전망’을 제시하는 ‘지표(index, sign)’의 기능을 할 뿐입니다. 마치 선지자들처럼. 역사학은 과거를 알려주고, 찾을수 있도록 지식과 길잡이 역할도 해줍니다. 더 나아가 복잡한 사건들과 다양한 의미들을 이해하고, 추론하게 도와주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역사적 인간들은 이 지표를 활용하여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능동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또 한번 강조하지만 역사는 과거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빌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학은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찾아가야하는 학문인 것입니다.
네 번째, 역사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공간과 시간의 한계, 특히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계승성과 영속성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고대부터 현재까지 단순한 ‘종’의 보존과 영속이 아니라 삶과 의미가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거기에 역사학이 지표나 방법론을 찾고 이해한다는 당위나 현실적 측면 외에 고대사를 지향하는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사실 인간은 모든 현상을 측적된 경험이나 자기의 인식범위로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조망이나 비교 등을 회피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한 능력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특히 장구한 시간의 연속체인 역사 활동을 자각하기 어려워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당(當)시대적인 사고와 판단기준을 갖습니다. 실제로는 수 백 년, 수 천 년 심지어는 수 만 년의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60년을 단위로, 혹은 100년을 단위로 사고하려고 합니다. 습관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인 존재로서의 한계를 유산으로 남긴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일상의 삶은 물론이고, 역사마져도 근시안적으로, 단기적으로, 개별적으로, 분절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개체가 가진 본질적인 시간의 한계, 즉 生과 死이지요. 또 가정에서 발생하는 조상의 존재와 자식에 대한 책임, 큰 집단이나 나라에서 필수적인 공동체 의식 등과 직결된 문제들입니다. 당연히 선지자들, 覺者들은 이러한 점을 해결하고 설득시키려고 많은 이론들을 만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因緣’ ‘業’ 같은게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또한 이러한 시간을 인식하는 차이점을 설명하려고 ‘주름상자 이론’을 만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대사를 공부하면, 반대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역사만큼, 고대 역사학만큼 현재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고, 현재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 모든 존재들은 과거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옛날에 제사장들이 왜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겠습니까? 그들이 주관하고 활용하는 도구가 왜 ‘달력(calender)’이겠습니까? 시간을 창조하고 재단하며 운영할수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고대는 근대나 현대와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초합리적, 통일적, 총체적이고 친자연적이며 세상에 대한 외경심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문명의 댓가로 비록 죽음을 인식했지만, 동시에 시간의 한계를 극복할 능력도 획득한 존재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비록 우리 ‘개체’는 죽더라도 ‘전체’는 물론이지만 또 다른 개체로 계승된다는 사실을. 즉 ‘영생’을 느끼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길고도 지루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사족을 하나 달려고 합니다.
역사는 과거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미래는 변형 그것도 약간의 변형이 가능할 뿐입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과거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도 다시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해석의 영향을 받기때문이지요. 과거의 다양한 창조는 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느땐가 이런 걸 알아챈 조상들은 신을 능가하는, 때로는 조롱도 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었지요. 신화.
왜 역사가, 특히 고대사 공부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그 밖에도 몇가지가 더있습니다만 오늘은 이걸로 끝내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극심한 혼란과 재편의 시기에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한 곳에서 지향하려 합니다. 저도 또한 늘 미래를 지향하지만 늘 과거를 달고 살면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입니다.
봄 날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입니다.
마음 껏 봄 날들을 누리십시오.
춘(春)설이 신기들린 선중의 붓질처럼 한 밤을 새하얗게 휘젓는 중입니다.
윤명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