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
나주에 설립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는 1922년 광주에서 임업묘포장으로 출발하여 1975년 현재 자리에 이전된 것이다. 이 연구소는 나고야의정서에 발맞추어 난대수종(아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나무의 종류) 등 우수한 우리나라의 토종 생물자원 산업화연구를 하는 기관이다.
산림자원연구소는 수목원도 공원도 아니지만, 여느 수목원 못지않게 넓고 다채로운 전시원도 갖췄다. 67만㎡ 면적에 804종 36,000본의 식물이 살고 게다가 입장료는 무료다. 연구소는 2022년에 100주년을 맞았고 일제가 한반도에 나무를 심기 위해 설립한 임업묘포장이 시작이었다. 1975년 광주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고, 1993년 산림환경연구소, 2008년 산림자원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 메타세쿼이아
전라남도 나주시 산림자원연구소의 가장 핫플레이스이자 하이라이트는 신록이 우거진 싱그러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중앙의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전남 담양이나 곡성에도 시원하고 아름다운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하나 이곳은 산림자원연구소인 덕에 더욱 관리가 잘 된 이유인지 다른 곳의 나무보다 건강해 보이고 쭉쭉 뻗은 나무와 보행 할 수 있는 길이도 좌우로 450m나 된다. 이 나무들은 1977년에 광주 목포 간 도로에 심어져 있던 것을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메타세쿼이아의 메타(Meta)는 영어의 포스터(post), 즉 '이후'라는 뜻이고, 세쿼이아(sequoia)는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그러니 메타세쿼이아는 세쿼이아 이후에 등장한 나무라는 뜻이다. 메타세쿼이아가 다소 낯선 이름을 가진 것은 이 나무의 존재를 아주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37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 나무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중국에서 발견되자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 그리고 소철과 더불어 살아 있는 화석으로 평가받았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메타세쿼이아를 처음 발견한 것은 중일전쟁 시기인 1937년으로 현대인들이 메타세쿼이아를 만난 것은 고작 70년에 지나지 않는다. 1937년은 일본이 중국의 난징에서 양민을 비롯한 30만명 이상을 죽인 해이다. 일본의 만행이 중국에서 자행되던 해에 중국인들은 목숨을 다해 서쪽으로 피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한 그루의 나무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고, 그 나무가 위대한 존재라는 것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4년 뒤인 1941년에 양자강 상류에서 35m가량의 신목을 발견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나무가 메타세쿼이아라는 사실을 몰랐다. 왜냐하면 나무를 발견한 사람조차도 한 번도 메타세쿼이아를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이 나무의 곧음과 당당함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고취시키기 위해 전국에 식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낯선 이름, 유구한 역사의 나무 이름은 대부분 한자어다. 우리나라의 나무 중 중국에서 도입한 게 많기 때문이다.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한자의 뜻만 알면 나무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원산지이면서도 우리나라에서 한자어로 부르지 않는 나무도 있다. 낙우송과의 메타세쿼이아가 주인공이다. 이 나무는 중국에서 '수삼(水杉)'이라 부른다. 이 나무가 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나무도 부모인 낙우송을 닮아 물을 좋아하고, 빠른 속도로 자라는 속성수다. 이 나무는 몇 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빨리 자란다. 그러나 메타세쿼이아는 부모를 많이 닮긴 했지만, 잎이 어긋난 부모와 달리 마주 달린다.
◆ 도토리 6형제의 참나무
'도토리 6형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대표적 낙엽성 식물로 참나무과 참나무속(Quercus)에 속하는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6종의 참나무를 일컫는 말로 '참나무 6형제'라고도 부른다.
식물도감에 없는 '참나무'란 명칭은 한 종(種 ; 식물에서 나온 씨 또는 씨앗)의 식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이들 참나무 6형제를 통칭하는 용어다. 산책길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토리 6형제들은 열매인 도토리를 싸고 있는 깍정이를 일컫는 각두(殼斗 ; 도토리 따위의 열매를 싸고 있는 술잔 모양의 받침.)와 잎의 모양이나 잎자루의 유무 등에 따라 구분된다.
참나무 6형제를 통칭해 참나무라 일컫는 이유는 이들이 같은 속 식물로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형제끼리 서로 연을 맺기도 하는데, 한 실례로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사이에 연이 맺어지면 떡 신갈나무로 불리는 아종(亞種 ; 종(種)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이 생겨난다. 참나무 6형제 중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는 참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에는 참나무란 말이 없는데, 이렇게 다양한 참나무 명칭에는 나름 사연이 있다.
참나무 이름이 붙어 있는 형제들 중 갈참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가을 늦게까지 잎이 달려있어 붙여진 '가을 참나무'에서 유래되었다. 졸참나무는 잎도 작은 편이지만 도토리 크기가 가장 작아 '졸(卒)'이 붙여진 것이다. 굴참나무는 두꺼운 껍질이 코르크 재료로 이용이 되는데, 이런 줄기에 세로로 골이 깊게 파여 있어 '골참나무'로 불리다가 굴참나무로 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나무란 말이 없는 형제들 중 신갈나무의 이름은 짚신을 신던 시절 짚신을 갈아 신을 때 이 나무의 잎을 깔고 신었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떡갈나무는 떡을 찔 때 이 나무 잎을 바닥에 깔았다고 해서 붙여 이름이다.
상수리나무에는 더 진지한 사연이 담겨 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는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가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어 토리나무의 열매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다고 한다. 묵을 맛있게 먹고 배고픔을 견더낸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토리로 만든 묵을 즐겨 찾아 토리묵이 상시(常時) 수라상에 오르게 되어 '상수라'로 불렸다가 '상수리'로 불리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도토리 6형제'에는 이토록 정겨운 이야기가 이름에 숨어 있는 줄 몰랐다.
도토리는 숙성해서 나무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털모자 모양과 뚜껑모자 모양으로 구분이 되는 깍정이로 덮여있다. 6형제 중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3형제의 각두는 털모자 모양이며,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깍정이 색깔은 연두색인데 비해 떡갈나무 깍정이는 갈색(혹은 주황색)이다. 뚜껑 모자 모양의 각두로 덮인 다른 3형제인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에서 신갈나무의 뚜껑 모자 비늘은 울퉁불퉁하며, 졸참나무의 도토리는 가늘고 길쭉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 대왕참나무 혹은 손기정 참나무
한겨울 집을 나서자 갈색 단풍잎을 거의 온전히 달고 있는 가로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근래 가로수와 조경수로 각광받고 있는 대왕참나무다. 요즘 전국 어디서든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가로수로 대왕참나무를 심어놓은 길도 적지 않다.
대왕참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도입나무로, ‘상수리 · 굴참 · 졸참 · 갈참 · 신갈 · 떡갈’ 등 우리나라 참나무들과 같은 참나무속(Quercus)이다. 그래서 늦가을 이 나무 아래에 작은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수형이 단정한데다 진한 붉은색 계열로 드는 단풍도 독특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그래서 가을이면 다시 보는 나무 중 하나다. 요즘 곳곳에 이 나무가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대왕참나무 잎은 길쭉한 잎 가장자리가 여러 번 깊이 패어 들어가 마치 ‘임금 왕(王)’ 자 같다. 이 때문에 이 나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잎 뒷면에는 흰색 털이 있고 꽃은 암수한그루로 4~5월에 아래로 늘어진 꽃줄기에 황록색으로 피지만, 꽃잎이 없어서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대왕참나무가 각광받는 이유 중에는 이 나무가 공해에 강하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도심에 심어도 잘 자라고, 나아가 도로변에 심어 자동차 매연이나 소음 등을 차단하는 용도로도 이 나무를 심고 있다.
▶손기정참나무는 월계수가 아닌 대왕참나무
이 대왕참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기념공원에 있다. 이곳은 손기정 선수 모교인 양정고 자리인데,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히틀러에게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심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 나무를 월계수로 알고 있었지만, 자란 것을 보니 대왕참나무였다. 오랫동안 이 나무를 월계수로 안 것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는 월계관과 월계수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나무 옆에는 월계수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손기정 선수는 시상식 때 일본국가 ‘기미가요’가 나오자 고개를 푹 숙이고 이 나무가 심어 있는 화분으로 일장기가 박힌 가슴을 가렸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1936년 시상식 때 들고 있는 화분 속 묘목, 그리고 손기정기념관에 보관 중인 월계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왕참나무가 아니라 루브라참나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루브라참나무는 대왕참나무와 비슷하지만, 열매가 좀 더 길고 잎 결각이 덜 깊은 나무다. 그래서 독일이 루브라참나무로 월계관을 만들고, 묘목은 모양이 비슷한 대왕참나무로 잘못 준 것은 아닐까, 루브라참나무 묘목을 받았는데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같은 다양한 궁금증이 나오고 있다.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에서 묘목을 받은 것은 8월이었고, 40여 일에 걸쳐 10월에 귀국했고, 이 묘목을 양정고 교정에 심은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고 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하는 얘기들이니 체육계 등에서 연구해 속 시원하게 밝혀주면 좋겠다.
이 나무의 잎 꼭짓점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핀오크(Pin Oak · 바늘 참나무)’라고 부른다. 이 참나무를 1990년 중반 조달청에 우리말 등재를 하면서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뜻으로 대왕참나무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박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책 <우리 나무 이름 사전>에서 “대왕참나무가 이름에 특별히 대왕이란 접두어를 붙일 만큼 다른 참나무보다 뛰어난 나무는 아니다”고 썼다. 1990년대에야 이름을 등록한 나무치고는 빠른 시간에 국내에 대표적인 가로수 · 조경수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 나무와 손기정의 인연을 고려해 대왕참나무보다는 ‘손기정참나무’나 ‘손참나무’ 등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손기정참나무 또는 손참나무로 바꾸면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면서 이 나무도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무 이름에 사람 이름을 딴 나무가 이미 있다. 현사시나무는 수원사시나무와 은백양 나무를 교잡시켜 만든 나무다. 이 나무를 만든 현신규 박사의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 참고문헌
1. 윤주복, [나무 쉽게 찾기] 전면 개정판, 진선출판사, 2018.
2. 김차종, [메타세쿼이아와 향나무 가로수길을 걷다], 네어버 블로그, 2023.
3. 김민철, [대왕참나무 혹은 손기정참나무], 한국교육신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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