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통영의 한산도가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다”
통영에서 한산도 통제영 관련한 학술세미나가 개최 된다
노승석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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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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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여수의 전라좌수영은 형세가 지리적으로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일본군의 해상 침입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이순신은 1593년 7월 견내량 해협과 한산도 바다 방어를 위해 전라도와 경상도를 제압할 수 있도록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같은 해 8월 조정은 이를 승낙하고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제도를 마련하여 이순신에게 전라좌수사 신분을 유지한 채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게 하였다. 이때에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임진왜란 당시와 후대의 역사기록에서 확인되는데, 한산도에 통제영이 최초로 설치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순신이 작성한 『난중일기』에는 계사년 7월 14일 여수 본영에서 진영을 한산도 두을포(豆乙浦)로 옮기고, 8월 15일에는 이순신의 지휘하에 삼도(전라·경상·충청)의 이억기, 원균, 정걸 등의 수사를 비롯한 순천 부사(권준), 광양 현감(어영담), 낙안 군수(신호), 방답 첨사(이순신), 사도 첨사(김완), 흥양 현감(배흥립), 녹도 만호(송여종) 등이 모여 작전을 모의한 내용이 나온다. 이순신에게 교서가 9월 12일에 내려졌지만, 작전상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여러 수사 및 부하들을 지휘하여 통제사로서 먼저 복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순신은 여수의 전라좌수영을 본영(本營)으로 기록하고, 한산도를 본진(本陣), 해상 진영(海營)으로 기록하였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본영과 본진이 모두 지휘본부가 있는 군영이라는 뜻이다. 다만 한산도는 여수에서 진영을 옮겨 오면서 이순신이 통제사로서 3년 8개월간 주둔했기 때문에 한산도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인물인 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박홍미(朴弘美, 1571-1642)가 지은 두룡포기사비(頭龍浦記事碑)와 정운희(丁運熙)의 행장(行狀)을 보면, 통제사 제도와 삼도수군통제영 창설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정조의 왕명으로 편찬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소재 「행록(行錄)」, 「시장(諡狀)」, 「신도비(神道碑)」, 송시열의 「통제영충렬사기」에도 그와 관련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상의 역사문헌에 기초한 한산도 통제영 창설에 관한 내용은 4백여 년 동안 하나의 정설로 전해져왔다.
오는 8월 9일(수) 통영한산대첩문화재단(천영기 이사장)은 한산대첩 431주년과 삼도수군통제영 설치 430주년을 맞이하여 통영한산대첩 축제와 연계해서 ‘최초의 통제영, 한산도!’라는 제목으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산도 통제영과 제승당에 대해 정확히 고찰하고자 『난중일기』를 교감 완역한 문화재해독전문가인 동국대 여해연구소 노승석 학술위원장과 김일룡 통영문화원장이 주제 발표를 하고, 이순신학 전문가인 이경식 전 육군본부리더십센터장과 통영사연구회 이사 박정욱, 이충실 통영 충렬사 사무국장 등이 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k-헤리티지뉴스 전문위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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