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의 기원을 아시나요?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뜻깊은 연말 보내기
김지연 시민기자
승인
2024.12.22 16:02 | 최종 수정 2024.12.2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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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세군 자선냄비는 언제부터 유래된 걸까? 서울 시청역 정동길에 자선냄비의 본부 격인 구세군회관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동길에는 2019년 ‘정동1928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옛 구세군중앙회관이 있다. 1928년 구세군 사관학교로 건축되어 성직자를 교육하는 신학대학으로 사용되다가 과천으로 캠퍼스를 이전한 1985년부터 구세군중앙회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2002년에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선정되었다.
외관을 보면 중앙 상부의 삼각형 박공과 중앙 현관을 장식하는 4개의 기둥이 인상적이다. 박공면에는 ‘구세군사관학교’라고 쓰여져 있다.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외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에 충실한 건물이다.
1층 현관에 들어가면 벽면에 구세군사관학교 1928이라는 글자를 새긴 돌판이 눈에 띤다. 좌우에 기숙사, 사무실과 홀들이 있고 식당과 주방이 있었다.
현재 오른쪽 사무실과 홀에 두손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2층 강당은 예배실, 회의실, 연회실 등 다용도로 사용한다. 강당에 들어서면 눈에 띠는 목조 트러스트(삼각형의 골조 모양)는 보나 기둥 없이 독특한 짜임새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14세기 영국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치형 해머 빔 트러스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양식이다.
건물 오른편은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3년 설립된 구세군역사박물관에는 100년 전 성경과 찬송가를 비롯 구세군의 역사, 유물, 그리고 사회봉사 이력과 ‘자선냄비운동’과 ‘브라스밴드’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에서 윌리엄 부스가 런던의 빈민을 위해 창시한 종교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던 이듬해인 1908년, 영국 구세군 선교사 로버트 호가드 일행이 선교활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구세군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조직과 활동에서 군대식 편제와 용어를 썼다. 선교사들의 직함은 사령관, 연대장, 대대장으로, 선교 계획은 작전, 선교 행위는 전투, 헌금은 탄약이라고 불렀다.
당시 일제에 저항하고자 했던 조선인들은 구세군에 입교하면 진짜 총과 탄약을 나눠주는 줄 알고 몰려 들었다고 한다. 선교 시작 열흘 만에 수천 명의 입교자를 모아 일본 경찰의 경고를 받았다. 구세군은 오해를 불식 시키기 위해 빈민에게 쌀을 나눠주고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자선 활동에 몰두했다.
1928년 12월에는 서울 곳곳에 한국 최초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쌀 수탈과 조선 전역을 때린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들어 가난한 자들이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자선냄비활동을 통해 모금한 848원 67전으로 급식소를 차려 매일 120명 안팎의 걸인들에게 식사와 의복, 땔감을 지원했다.
이렇게 구세군사관학교는 나눔과 헌신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인재를 양성하던 본부였다. 현재는 구세군 역사박물관과 두손갤러리로 탈바꿈하여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세밑에 구세군회관에 들러 따뜻한 나눔이 있던 건물도 둘러보고 전시도 보고 정동의 깊은 역사를 느끼면 한 해를 풍요롭게 마무리 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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