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박대재 교수, 프랑스에서 새로운 광개토왕비 탁본 발견·보고

콜레주드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본, 서구에서 소장한 두 번째 탁본

고현정 시민기자 승인 2023.11.20 14:47 | 최종 수정 2023.11.22 10:02 의견 0

11월 24일(금) 프랑스 파리 콜레주드프랑스 금석문 학회에서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대재 교수가 프랑스에서 새롭게 발견한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탁본을 학계에 보고한다.

광개토왕비는 고구려 광개토왕(391-412)의 업적과 함께,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守墓人)에 관해 기록한 비석으로 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시 동북쪽에 세워져 있다. 거대한 자연석을 가공해 무게 약 30톤에 이르는 이 비석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꼽히며,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19세기에 그 존재가 다시 알려졌다.

이번에 박 교수에 의해 보고되는 새로운 탁본은 콜레주드프랑스(Collège de France) 아시아학회(Société Asiatique)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 콜레주드프랑스는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고등교육·연구기관이다.

기증된 이래 약 100년 간 서고에 묻혀 있던 이 탁본은 학회 창립 20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는 2022년 말에야 그 존재가 비로소 인지되었고, 올해 9월 프랑스를 방문 중이었던 박 교수가 소장본의 존재를 알고 실측 조사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연구 조사가 이뤄지게 되었다.

이로써 에두아르 샤반느(Édouard Chavannes)가 수집하여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탁본이 서구에 있는 유일한 광개토왕비 탁본이라는 인식이 깨지게 되었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새롭게 조사된 광개토왕비 '아시아학회본'(박대재 교수 제공)

콜레주드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소장본(이하 '아시아학회본')에 대한 몇 가지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① 제작 특징

19세기에 광개토왕비가 재발견된 이후, 비문을 확인하기 위해 비석 표면을 덮었던 이끼를 불로 태우고 나서 비석의 글이 종이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비석에 종이를 대고 글자의 윤곽을 연필이나 먹으로 그려 초안(쌍구본)을 만든 다음, 글자 사이의 여백을 먹물이나 숯검정으로 채워 마치 탁본처럼 보이게 만든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가짜 탁본이다.

진정한 탁본은 '원석 탁본'과 '석회 탁본'으로 나뉘는데, '원석 탁본'은 원래의 비면에 그대로 탁본한 것이며 '석회 탁본'은 중국인 탁공들이 양질의 탁본을 얻기 위해 비면에 석회를 발라 조정한 후에 찍어낸 것이다. 때문에 '석회 탁본'은 '원석 탁본'보다 가치가 낮지만, 그 제작의 편의성 때문에 현존하는 광개토왕비 탁본의 80% 정도가 '석회 탁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접지(接紙) 방식이나 행과 행 사이 괘선의 선명도를 통해 볼 때 석회 탁본으로 판단된다.

광개토왕비는 4면인데, 이 탁본은 제2면의 탁본이 두 장이고 제3면의 탁본이 없는 4장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박 교수는 기증 당시부터 제3면의 탁본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② 탁본 시기

Alice Getty (1865~1946)


'아시아학회본'의 기증자는 1917년 5월 11일에 남겨진 학회 회의록에 '게티(Getty) 여사'로 간단히 기록되어 있어 단정하기 어렵지만, 박 교수는 당시 아시아학회의 회원이었던 앨리스 게티(Alice Getty, 1865~1946)으로 추정한다. 앨리스 게티는 아시아 불교 미술에 관심을 갖고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아시아 지역을 세 차례 답사하였는데 이 무렵에 탁본을 수집한 것 아닐까 한다.

앨리스 게티의 탁본 구입 추정 시기와 탁본의 패턴을 다른 탁본들과 비교해 보면, 1913년 수집된 서울대 규장각 소장 석회 탁본보다 빠르며 기존 유일한 프랑스 소장본으로 알려져 있던 '샤반느본'(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석회 탁본)보다는 늦은 시기인 1908년에서 1913년 사이로 판단된다.

③ '아시아학회본'의 가치

비록 석회 탁본이기는 하나, 한 면(제2면)을 동시에 뜬 중복된 탁본이 있다는 것은 '아시아학회본'이 유일하다. 이 중복된 탁본은 묵이 묻은 패턴을 확인하고 탁본 연대를 추정하는 객관적 지표로 앞으로의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아시아학회본'은 '샤반느본', '규장각본' 등 다른 탁본과 비교하면 비면의 석회가 떨어져 나가는 초기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하루 빨리 배접이 이루어져 탁본의 변형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박대재 교수는 11월 24일 콜레주드프랑스 금석문학회에 이어, 내년 1월 19일 아시아학회에서도 발표를 앞두고 있다. 아시아학회에서는 기존 유일한 유럽 소장본으로 알려져 있던 '샤반느본'과 직접 비교하여 좀더 진전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프랑스 랭스성당 앞에 선 박대재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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