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6호 난중일기( 亂中日記) 해독의 역사

- 교감(校勘)을 통한 정본화 작업

노승석 전문위원 승인 2024.01.19 12:09 의견 0
국보 76호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제공, 문화재청 현충사 사진, 불허복제


국보 76호 《난중일기》의 책명은 1795년 정조(正祖) 때 초고본을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간행할 당시 편찬자인 규장각 문신 윤행임(尹行恁)과 검서관 유득공(柳得恭)이 편리상 붙인 것이고, 원래는 연도별《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무술일기》란 이름으로 각각 나누어져 있다. 다만, 《을미일기》는 초고본이 전하지 않고 전서본이 있으며,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일기초(日記抄)〉에 일부 초록된 내용이 있다.

《난중일기》내용은 주로 진영에 출근하여 업무를 본 내용, 전쟁의 출동 상황, 부하 장수의 보고내용, 공문을 발송한 일 장계를 올린 일 등이 적혀 있다. 그 중에는 장계초본 및 서간문으로 추정되는 내용들이 간간이 삽입되어있다.(임진·계사·갑오일기) 또한 공사간(公私間)의 인사 문제와 가족에 대한 안부 걱정, 그리고 진중 생활에서 느끼는 울분과 한탄 등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간혹 시와 문장을 지어 적기도 하였고, 이순신 자신이 수양하는데 도움이 되는 옛 시문과 병서를 인용한 글도 있으며, 명나라 장수의 이름과 그들로부터 받은 물품 목록도 상세히 적혀있다.

초고본은 전편이 초서로 작성되어 있어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순신이 평소에 주로 사용한 서체인데, 일기에는 긴박한 상황에서 심하게 흘려 적은 글씨들과 삭제와 수정을 반복한 흔적이 자주 보인다. 후대의 활자본에는 이 부분에 해당하는 글자들이 대부분 오독되거나 미상으로 남게 되었다. 특히 초고본 《임진일기》와 《계사일기》, 《정유일기》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해당 일기를 작성한 해에는 유난히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임진년에는 왜란이 시작되어 옥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을, 계사년에는 웅포·견내량 해전을, 정유년에는 정유재란과 거제·안골포·칠천량·벽파진·어란포·명량해전 등을 치렀다. 큰 전쟁이 일어난 해에는 일기분량이 일정하지 않고 누락이 심한 반면, 큰 전쟁이 없었던 해는 비교적 일정하게 적혀있다. 임진․계사․정유일기가 전자에 속하고 갑오․병신일기가 후자에 속한다. 《을미일기》는 큰 전쟁이 없었던 해에 작성한 것이므로 후자에 속할 것이나 초고본이 전하지 않으므로 원본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다.

난중일기 정유일기 초고본, 소유자 최순선, 문화재청 현충사 사진

《정유일기》는 먼저 일기를 적었다가 나중에 다시 재작성하여 두 책이 있다. 이로 인해 이 두 일기는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 66일간의 일기가 서로 중복되어 있다. 정유년(1597)은 이순신에게 있어 고난과 아픔의 시련이 연속된 한 해였다. 그는《정유일기Ⅰ》4월 13일에서 “모친의 상사(喪事)로 매우 애통하여 다 적지 못하고 뒤에 대강 추록한다.”고 하였다. 제때에 글을 다 적지 못한다는 말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 매우 급박함을 암시하고 있다.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은 《정유일기》에 대해 “본시 충무공 자신이 왜 그렇게 다시 쓰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앞 책에 간지가 잘못 적혀 있는 것과, 또 내용에 있어서도 뒤의 것이 앞의 책보다 비교적 좀 더 많이 적힌 것 등을 보아, 혹시 공(公)이 시간의 여유를 타서 기억을 되살려 가며 새로 한번 더 적어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또한《정유일기》의 필기상태만 보아도 유난히 심하게 흘려있거나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훼손된 부분이 많다. 이는 당시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투옥되었다가 나와서 백의종군하는 중에 또다시 모친상까지 당한 악순환의 상황에서 기록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고본에는 알아보기 어렵게 써진 미상(未詳) 글자와 오기한 글자 및 훼손된 글자들이 제대로 판독되지 못한 상태로 상당수 남아 있었다. 1935년 일본인 학자중심으로 결성된 조선사편수회에서 초고본 난중일기 전편을 해독하여 《난중일기초》를 간행했지만, 여기에는 초고본의 미상과 오기 부분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불완전한 형태로 간행된 활자본이 후대의 난중일기번역본의 대본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초기에 출간된 홍기문과 이은상의 난중일기 번역문에도 그러한 해독상의 문제가 남게 되어 학계의 여러 학자들이 난중일기에 대한 교감(校勘)의 필요성을 제기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난중일기 초고본과 후대의 이본 활자본을 정리하여 해독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부터 난중일기 교감(校勘) 작업을 진행해 왔고, 그 결과 2010년에 정본화된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간행한 것이다.

참고문헌 :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동아일보사, 노승석 역 2005)

교감완역 난중일기(민음사, 노승석 역 2010)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2판(여해, 노승석 역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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