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의 조어(鯈魚)는 무엇인가
새로운 문헌고증
노승석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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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08:03 | 최종 수정 2024.02.2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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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번역할 때 문헌적인 내용보다 시공간적인 상황에 따라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적인 번역이 내용에 맞지 않을 경우 문맥과 상황에 맞는 번역을 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면 글자의 본래 의미를 벗어나거나 생경한 명칭을 사용함으로 인해 이견과 논란이 나올 수 있다. 《난중일기》 2월 1일자를 보면, 조어(鯈魚)가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안개비가 잠깐 뿌리다가 늦게 갰다. 선창(船艙)으로 나가 쓸 만한 판자를 점검하여 고르는데, 때마침 수장(水場) 안에 조어(鯈魚)가 구름처럼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2천여 마리를 잡았다. 장관이라고 말할 만하였다.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역주》임진년 2월 1일-
《난중일기》가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20세기 중반에는 홍기문과 이은상은 조어(鯈魚)의 조(鯈)자는 사전의 의미를 따라 “피라미”로 번역하였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글자의 의미와 다르게 현지의 상황을 고려한 다양한 명칭들이 나오게 되었다.
홍기문(1955) : 물고기(피리)
이은상(1968) : 피라미
조성도(1974) : 피라미
이민수(1979) : 피라미
北島萬次(2001) : 작은 고기(小魚)
임기봉(2007) : 몽어
그 외 : 학꽁치, 멸치, 숭어새끼 등
역대의 조어(鯈魚)에 대한 연구는 사전적인 의미부터 현지상황에 따른 새로운 의미의 명칭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우선은 조어에 대한 문헌적인 해석도 여러 가지가 설이 있으므로 이를 먼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조어(鯈魚)는 사전과 문헌의 내용을 보면 “피라미” “작은 흰 물고기(小魚)”, “뱅어(鰷)”의 뜻이 있다. 《장자(莊子)》〈추수(秋水)〉편에 보면, 성현영(成玄英)의 주소에 “조어(鯈魚)는 백조(白鯈)이다.”라고 하였고, 《청패유초(淸稗類鈔)》 〈백조(白鰷)〉편에, “조어(鰷魚)는 백조(白鰷, 뱅어)이고, 조어(鯈魚)로서 배가 희고 비늘이 가늘고 수면에 떼로 몰려다닌다.”고 했다. 당(唐)나라 때 왕유(王維)의 《산중여배수재적서(山中與裴秀才迪書)》에는 백조어(白鰷魚)가 “경조(輕鯈)”로 나온다. 명(明)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조어(鰷魚)는 작은 물고기로 길이가 몇 촌(寸)이고 몸이 좁고 납작하여 버들잎과 같으며 비늘이 가늘고 성질이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 내용들은 모두 조어(鯈魚)가 뱅어라는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나 4백여 년 전 여수의 선창이 있었던 곳은 모두 변형되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여수에 세거한 현지의 주민들은 그 당시와 현재의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음력 2월에 많이 보이는 물고기가 “숭어”라고 말한다. 이순신이 말한 조어(鯈魚)는 사전과 문헌 내용을 정리해볼 때 “뱅어”가 맞지만, 주민들의 증언과 현지 상황을 고려하면 작은 물고기인 숭어새끼로 추정된다. 이를 “등기리(登其里)”나 “모치(毛峙)”라고도 한다.
글 : 노승석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자문위원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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