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해독의 역사와 정확한 고증

학계의 검증 필요함

노승석 전문위원 승인 2024.02.29 09:51 의견 0
국보 76호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문화재청 현충사 사진, 불허복제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대한 연구는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6년(대정 5년)에 일본인 아요야 나기 난메이(靑柳南冥(綱太郞) 1877∼1932)가 《난중일기》를 일본어로 처음 번역하였고, 1925년에 창립한 조선사편수회(회장 금정전청덕(今井田淸德))의 감독으로 나카무라 히데다카(中村榮孝)와 임경호(林敬鎬), 홍희(洪憙) 등이 초서체《난중일기》해독본을 교정한 뒤 《난중일기초》를 간행하였다.

그후 1953년 설의식(薛義植)이 《난중일기》의 일부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1955년 홍기문(洪起文)이 《난중일기》전편을 처음 번역했으며, 1968년 이은상은 《난중일기》초고본과 전서본을 합본한 번역서를 현암사에서 간행하였다. 이처럼 초서로 작성된 한문체《난중일기》가 고전 학자들에 의해 번역됨에 따라 이 책들이 오늘날 《난중일기》번역의 효시가 되었다.

홍기문과 이은상의 번역은 미록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문헌자료가 매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매우 심혈을 기울인 초기의 노작이다. 그러함에도 미상과 오독이 남아 있어 교감(校勘)과 재번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됨에 따라 필자의 《난중일기》의 교감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이것이 《난중일기》의 해독역사인데, 처음부터 줄곧 번역자는 모두 고전학자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도 《난중일기》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고 2014년 명량 영화가 상영되면서 대중들의 《난중일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러한 고무적인 현상에 편승한 ‘이순신정신 배우기’ 독서열풍은 상당한 기대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론과 이설이 양존하는 부작용도 있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요즘은 한국학 관련한 고문헌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이순신과 난중일기 서적들이 봇물을 이룬다. 전문가를 방불케하는 책들도 나오고 비전공자와 일반인들도 쉽게 집필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석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누구나 의견과 주장을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모두 정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해서 검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의 교감학(校勘學者) 진원(陳垣)은 “교감 연구는 통달한 식견으로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바르게 된 것을 잘못이라고 하여 혼란만 더욱 심해진다.”고 하였고, 중국 북경대 예기심(倪其心)교수는 “교감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교감이란 수십년 동안 고전을 연구한 실적이 있는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로 혼란만 생길 것이다.

《난중일기》해독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전학자들간에 통용하는 문팔초이의 탈초방법과 고전의 문리력으로 풀어야 한다. 특히 1935년 조선편수회의 일본인이 황당하게 오독한 대표적인 사례로 ‘여진입(女眞卄)’과 ‘여진삽(女眞卅)’(병신년 9월 14, 15일)을 들 수 있는데, 명칭 뒤에 ‘스물입(卄)’과 ‘서른삽(卅)’ 숫자가 있어서 항간에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이미 고전전문학자 다수가 문맥이 통하지 않는 오독이라는데 공감하였고, 이는 “여진이라는 인물이 수행하다(女眞共)”라는 뜻이라고 결론지어 졌다.(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61권, <여진공(女眞共)구 해독에 관한 일고찰>논문 참고)

이처럼 철저한 문헌고증으로 학계에 검증을 받은 결과, 세간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이것이 고전학계에 기여한 업적이 되었다. 이를 위해 관련된 문헌분석과 함께 관련된 글자의 용례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우리의 역사상 위인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의 정신을 세상에 올바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학계에서 검증된 정확한 내용을 위주로 주장해야 한다. 고전 문법이 중국 청말(淸末) 학자 마건충(馬建忠)이 고전문법의 이론을 세운 뒤에 비로소 정립되었듯이 《난중일기》에 대한 해석도 고전학계의 엄밀한 검증을 거친 내용을 바탕으로 해야 세인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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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자문위원(난중일기)

역서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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